주송현 님 /캐리커쳐=디미닛
주송현 님 /캐리커쳐=디미닛

코로나 19로 예술계 전체가 위축된 상황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1973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40여 회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약 20년전부터 자신을 화수(화가 겸 가수)라고 자칭한 조영남이다.

조영남은 대작(代作) 사실을 알리지 않고 구매자들에게 그림을 판매한 혐의로 5년간의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지난달 25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림 대작(代作) 사건의 발단으로는 과거 여러 차례 방송 매체에 출연해 아트테이너로서의 열정을 소개한 것이 주목된다. 화투를 주요 도상으로 담아낸 그림을 선보이며 독학으로 오랜 기간 미술에 매진한 노력을 강조한 그의 인터뷰만 보면 남이 대신 그렸을 거라 상상하기 어렵다. 그의 그림을 구매한 상당수도 그의 친작(親作)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조영남의 초기 작업을 보면 주로 화투 등을 직접 잘라서 붙이는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화랑이나 구매자들 사이에서 콜라주보다는 회화 작품의 선호도가 높고, 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점차 회화 작업에 치중하게 된다. 문제는 작품의 아이디어만 그가 제공하고 숨은 조수였던 전업 화가가 형상화한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숨긴 채 판매, 전시한 점이다.

이에 억울함을 가진 조영남은 2008년 12월10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자 세계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영국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를 거론하며, 그는 아이디어만 내고 조수들에게 제작을 맡긴다고 전한 바 있다.


가깝지만 낯선 현대미술과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는 '우리 시대의 피카소'로 꼽히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선보이는 작품마다 전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피카소처럼 생전에 명예와 부,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80년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yBa(young British artist)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설치작품, 회화, 조각 등을 통해 미술과 미디어 테크놀로지, 그리고 대중문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가끔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삶과 죽음의 매혹과 공포를 묘사하는 데미안 허스트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과 감성을 비판적으로 혹은 날 것 그대로 인식하도록 시선을 조율한다.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현재 그가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작가가 된 계기는 1991년 사치 갤러리가 구입한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 2004년 10배 이상 상승한 100억원이 넘는 금액에 판매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2008년 당시 한 경매 회사의 단일 작가 경매에서 1억1150만파운드(약 245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미술시장에 충격을 안긴 바 있다.

대작 작가로 익히 알려진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조영남은 세간의 뭇매를 맞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미술은 여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질적인 차원에서의 기준점이 불명료하다 보니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미적인 성취를 위해 오늘도 캔버스에 매달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그림이 예술성을 획득하긴 어렵다.

엄격한 형식과 기교의 권위를 내려놓고 예술의 무질서한 증식을 허용하는 현대미술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눈부신 아이디어를 찾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접근이 용이한 만큼 미적 평가에 있어서는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이해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우환의 점은 단순한 점이 아니다


전세계 미술계가 모노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우환을 주목하는 이유는 담백한 듯 여운이 있는 작품에 담긴 특유의 시대와 조응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이우환, Dialogue, 2008 /아트투게더 제공
이우환, Dialogue, 2008 /아트투게더 제공

이우환은 시간의 무한성과 사물간의 공간적 질서를 평면의 화폭 위에 점과 선으로 그리거나 빈 공간에 돌과 철판을 배치시킴으로써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대립하고 동시에 보족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들이 빚어내는 긴장과 대화의 맥락을 통해 'Resonance(공명, 울림, 여운)'를 유발하고,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평면의 화폭을 벗어나 벽으로 공간으로 현실에 반응하는 모든 것으로 전이됨으로써 무(無) 또는 무한(Infinity)으로 확장된다.

마치 구도자가 지난한 수행 과정을 통해 진리에 이르고자 하듯이, 그는 조형요소를 극도로 절제하고 자신의 예술적 규율을 따름으로써 표상의 세계 그 이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무한의 은유'이자 한 편의 시(詩)이고, 예술적 보편성을 집약한 철학적 작품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조영남이 조수 혹은 보조자를 통해서 작품을 제작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작가 혼자서 작업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벽화나 회화 작품, 조각, 공예,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기술과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현대미술'을 외치고 '자유'를 강조하며, 현대미술의 대가들을 내세워 자기 작품을 합리화하고자 한 시도에서 드러난 극명한 차이(差異)이다.


대작 사기 혐의만 무죄일 뿐


이번 재판 과정을 통해 조영남의 작가적 태도와 예술세계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중들이 현대미술을 너무 모른다는 결론이 났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현대미술의 패러디라 부르던 자신의 그림을 이제는 세계 최초의 트롯파 미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지는 구태의연한 미술계의 벽을 허물고자 유쾌함을 더한 시도에는 공감을 표한다. 다만 개념미술에 가깝다던 그의 작품에는 단지 화투만이 보일뿐, 어디에도 화투 너머의 허를 찌르는 미적 코드나 진보성을 찾기 어렵다.

현대미술에 대한 그의 생각이 좀 더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최근 그가 출간했다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글=주송현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주송현님은?
한양대에서 미학을 가르치고 갤러리에서 아트디렉터로 경력을 쌓았다. 특히 AI아트 갤러리 아이아에서는 경매사로도 활동하며,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화가가 그린 작품을 경매에 출품시켜 낙찰에 성공했다. 미술시장 관련 강연을 수차례 진행하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현재는 어렵고 난해한 미술을 일반 대중에 쉽게 전달하고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 유튜버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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