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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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새가 알애서 깨어나는 새끼를 보는 기분이 이럴 것 같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 되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쁜 마음이 가장 크겠죠.

지난 13일 2021 신한은행 헤이영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1 팀전 경기에서 한화생명e스포츠(한화생명)과 락스 게이밍(락스)의 맞대결에서, 배성빈의 플레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박인수도, 이재혁도 그랬다

모든 리그에서는 항상 유망주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신예지만 경기력이 좋고 긴장도 많이 하지 않는 선수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가리켜 유망주라고 하죠. 대부분 유망주를 거쳐야지만 스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시즌에는 누가 유망주로 떠오를지 항상 관심이 모이곤 했죠.

락스 게이밍 이재혁/사진=이소라 기자
락스 게이밍 이재혁/사진=이소라 기자

박인수도 그랬습니다. 펜타 시절 유영혁이 이끄는 팀에 밀려 거의 주목 받지 못했던 박인수였지만 유영혁이 펜타와 결별하고 박인재 감독이 박인수를 본격적으로 트레이닝하면서 점점 성장했죠. 박인수는 만년 유망주였지만 카트라이더 리그 듀얼X에서 팀전-개인전 모두 우승하며 알에서 깨어나는데 성공했죠.

이재혁도 정준 해설 위원의 픽을 받아 '정준 아들'이라고 불리며 유망주로 주목 받았죠. 하지만 몇년이 지나도록 이상하리만큼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재혁 역시 박인재 감독의 지도 하에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에서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한화생명 문호준 키즈 타이틀이 전부?

배성빈과 박도현이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문호준'이라는 이름이 따라 다녔습니다. '황제' 문호준이 새로 팀을 만들면서 신예인 박도현과 배성빈을 팀에 합류시켰기 때문이죠. 둘은 '문호준 키즈'라고 불리며 데뷔하기도 전부터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화생명e스포츠 배성빈/사진=넥슨 제공
한화생명e스포츠 배성빈/사진=넥슨 제공

그리고 데뷔 시즌에서 박도현과 배성빈은 개인전에서 나란히 2, 3위를 차지하며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 했습니다. 이재혁이 당시 우승을 차지했기에 카트라이더 미래를 이끄는 '01라인'으로 묶여 엄청난 관심을 받았죠.

하지만 그시즌 이후 두명은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개인전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고 팀전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문호준이 캐리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주목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배성빈과 박도현은 '만년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배성빈

선수들은 배성빈이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습하는 선수라고 전했습니다. 그에 비해 실력이 잘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배성빈 역시 아직은 유망주라는 알을 깨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어떤 계기가 필요했을 테지만, 이상하게 배성빈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 배성빈은 몇번의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해 기회를 잡았지만 강한 상대들에게는 패하면서 알을 깨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문호준이 은퇴를 선언한 2021년, 배성빈은 오히려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한 듯 보였습니다. 어느 떄보다 열심히 연습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연기됐을 때도 연습에 몰두하며 묵묵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배성빈은 테크M과 영상 인터뷰에서 "빨리 리그가 시작해서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10번 넘게 했습니다. 영상에서 너무 여러번 언급해 한번을 제외한 9번의 발언은 모두 편집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최강자 이재혁을 제압하며 알에서 깨어난 배성빈

그런데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배성빈은 13일 락스전에서 에이스 결정전에 출격했습니다. 상대는 개인리그 2회 우승자이자 최근 가장 좋은 폼을 보유하고 있는 이재혁이었죠.

한화생명e스포츠 배성빈/사진=이소라 기자
한화생명e스포츠 배성빈/사진=이소라 기자

최근 이재혁은 선수들에게 '주행을 가장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이재혁을 개인리그 우승후보 0순위로 꼽았죠. 그만큼 최근 이재혁의 포스는 엄청났습니다.

그런 이재혁과 배성빈의 에이스 결정전 맞대결. 누가 봐도 이재혁의 승리가 자명한 듯 보였죠. 전 시즌에서도 이재혁이 배성빈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겼기에 배성빈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배성빈은 마지막 코너에서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는 과감한 코너링을 선보였고, 결국 이재혁을 물리치고 에이스 결정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한화생명에게 2연승을 안긴 것은 물론, 이재혁이라는 대어를 제압하며 드디어 알에서 깨어나는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 같다는 설렘, 그리고 알에서 깨어나는 유망주를 보는 짜릿함까지, 이날 배성빈이 팬들에게 최고의 기분을 선물한 듯 보입니다. 

박인수와 이재혁이 알에서 깨어난 뒤 카트라이더 리그를 이끄는 스타로 발돋움 했듯, 배성빈도 이들과 같은 길을 걷기를 바라 봅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일이니까요.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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