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시장이 글로벌화 되면서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2019년 '카나비' 서진혁 사태를 통해 촉발된 선수 보호 문제가 붉어지면서 제대로 된 e스포츠 에이전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아직까지 e스포츠 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에이전시를 만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e스포츠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공석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제대로 된 감시도 없이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죠. 음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이전시 사업은 선수들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갈 수 있어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에 이상헌 국회의원 역시 "e스포츠 에이전시의 관리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명의 에이전시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내 e스포츠 에이전시 회사 중 선수들에게 가장 신뢰받고 있는 박재석 쉐도우 코퍼레이션 대표입니다. 선수들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박 대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15년, 인생의 반을 e스포츠와 함께하다
박 대표는 2007년 스타크래프트 코치로 e스포츠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김은동 감독과 함께 STX를 이끌었던 박재석 코치는 프로리그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코치로서 인정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코치 시절, 선수들의 생활 태도 및 인성에 매우 엄격했던 코치로 유명했죠.
이후 박 대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스베누 코치와 감독으로 활약했습니다. 2016년에는 디그니스타 감독을 거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의 비리비리 게이밍 코치를 역임했죠. e스포츠에서는 잔뼈가 굵고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e스포츠와 인연을 맺은지 벌써 햇수로 15년이 됐네요. 그동안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그 와중에서 시행착오도 있고, 아픔도 있고, 어려움도 컸지만 그래도 e스포츠는 제 인생이에요. 아직도 e스포츠에서 일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 드립니다."
자신의 인생 반을 게임단과 함께 했던 박 대표가 코칭스태프를 그만 두고 에이전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e스포츠 에이전시가 아직은 생소하고,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에이전시 사업에 발을 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표가 에이전시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 역시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대로 된 에이전시가 없었던 그는 해외 팀과 계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접했습니다. 이대로라면 경험 없는 선수들은 제대로 된 계약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계약은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에요. 그런데 프로게이머도 그렇고, 그들의 보호자인 부모님들도 그렇고 계약 내용이나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법적으로만 문제가 없다고 해서 계약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특히 해외와 계약할 때는 더욱 어렵죠. 언어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그 나라의 e스프츠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좋은 계약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피부로 경험하면서 한국에도 e스포츠 에이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9년 이후 박 대표는 생활체육지도사,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사회학 등 다양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든다면 선수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명문대에 갔을 것"이라고 멋쩍게 웃었습니다.
의심의 눈초리에서 신뢰를 얻기까지
그동안 e스포츠 에이전시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았습니다. 과거 문제를 일으켰던 감독들을 비롯해 e스포츠 관계자들이 암암리에 에이전트 역할을 하면서 선수 및 코칭스태프를 착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에이전시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졌죠. 공식적으로 e스포츠 에이전시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수면 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시는 현재 박 대표가 운영하는 쉐도우 코퍼레이션이 유일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니까요. 그래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에이전시로 돈을 버는 것보다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그놈이 그놈이 아니고 이 사람은 좀 다르다'라는 인식을 심어줘야지만 에이전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박 대표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선수들과의 신뢰 구축을 최우선 목표로 했습니다. 진심을 다해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선수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 알아봤죠. 또한 코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그 선수에게 맞는 팀을 추천하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진심은 통했던 것일까요. 선수들은 조금씩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50명의 프로게이머를 보유한 e스포츠 전문 에이전시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보여준 최선에 선수들은 신뢰로 답했고, 이적 시장에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e스포츠 에이전시의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
e스포츠 에이전시가 아직 활성화된 상황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상황도 아닙니다. 하지만 e스포츠가 산업적으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에이전시입니다. 박 대표가 걸어가는 길이 한국의 e스포츠 에이전시 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e스포츠 에이전시 사업이 수면 위로 나와야 합니다. 법 안에서 감시와 관리가 이뤄져야 하죠. 박 대표는 누구보다도 e스포츠 에이전시 사업이 제도화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e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할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과정이 공식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지인, 아는 사람을 통해 해외 진출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시스템 안에서 선수들의 권익이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선수 발굴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팀과도 윈윈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거든요. 선수-에이전시-팀이 서로 신뢰를 구축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쉐도우 코퍼레이션 그리고 박 대표의 꿈
박 대표가 꿈꾸는 e스포츠의 바탕에는 '신뢰'가 있습니다. 서로를 믿고, 하나의 유기체로 돌아가는 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그 톱니바퀴에 그가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현재 박 대표가 운영하는 쉐도우 코퍼레이션에는 프로게이머 50명을 비롯해 아마추어 선수까지 총 100명과 함께합니다. 김정수, 정노철 감독을 비롯해 '바이퍼' 박도현, '에이밍' 김하람, '킹겐' 황성훈, '제카' 김선우가 있고 주목할만한 신인으로는 T1 '버서커' 김민철, '일리마' 마태석, '피셔' 이정태 등이 소속돼 있습니다.
"선수들 한명, 한명 모두가 정말 저에게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들과 함께 신뢰가 바탕이 되는 e스포츠 에이전시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너무나 감사 드리고 저를 믿어주시는 만큼 보답할 수 있도록 매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이적시장에서도 좋은 활약 기대해 주세요."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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