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를 거닐다 발걸음을 멈췄다. 눈앞에서 그야말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 피터지게 싸우고 있던 주인공은 바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였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지옥' 체험존을 코엑스 한복판에 설치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자, 디즈니플러스도 질 수 없다는 듯 맞섰다. 코엑스에 설치된 모든 전광판에 오리지널 콘텐츠 '로키' 광고를 도배하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이 글로벌 동영상서비스(OTT) 격전지로 부상했다는 점이 피부로 와닿았다. '공룡 OTT'로 불릴 만큼 체급이 큰 두 선수가 강남 코엑스에서 치열하게 맞서는 모습이라니.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던 진풍경일 것이다. 넷플릭스가 먼저 접수한 이 구역에 도전장을 던진 디즈니플러스. 과연 승부는 어떻게 될까.
'싸움의 기술' 제 1조는 '선제공격'이다
국내든 해외든 OTT 시장의 최강자는 넷플릭스가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유료구독자를 확보할 것이며 향후에도 이런 높은 점유율이 지속될 것이란 의미다. 2007년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OTT 시장을 연 초기 사업자다. 기존 TV 중심 미디어 시장에 '선제공격'을 날린 결과, 현재 전세계 2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넷플릭스는 남다른 싸움의 기술로 확고한 '1등'이 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꼽은 넷플릭스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규모의 경제'다. 한 전문가는 "2억명에 달하는 유료구독자에게 콘텐츠를 송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만으로는 넷플릭스의 경쟁우위를 설명할 수 없다. 막강한 자본력과 가입자수를 지닌 플랫폼이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유독 선두를 달리는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한다.
넷플릭스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현지화'로 꼽힌다. 현지 이용자들에게 초점을 둔 최적화 작업이 이뤄질 때 서비스 수용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넷플릭스는 각국 정서와 문화를 고려한 '로컬 콘텐츠'를 속속 발굴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현지 콘텐츠 제작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로컬 콘텐츠를 수급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 같은 현지화 모델은 넷플릭스가 개척하고, 구축한 것으로 콘텐츠 현지화 방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도, 글로벌 시장 개척에서도 '선제공격'을 날린 넷플릭스가 싸움의 고수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최강자로 자리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있는 이유다.
반전 승부는 '카운터 펀치'가 필요하다
승부는 언제나 예측불가능한 법이다. 회심의 카운터 펀치가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법.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 OTT 시장에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는 디즈니플러스가 꼽힌다. 만약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넷플릭스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지만, 디즈니플러스라면 유의미한 점유율을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출시 약 1년 만에 글로벌 유료구독자 1억명을 확보했다. 또 모기업 월트디즈니컴퍼니는 한 해 콘텐츠 제작 예산으로 330억달러(약 39조3000억원)를 편성할 정도로 자본력을 갖춘 거대 기업이다. 태생부터 '규모의 경제'를 장착한 것이다. 후발주자임에도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의 강력한 맞수로 꼽히는 이유다.
디즈니플러스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기 위한 전략은 두 가지로 꼽혔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현지화' 전략이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현지 이용자들을 만족시키는 로컬 콘텐츠 수급을 꾸준히 늘려간다면 충분히 반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전문가는 "3년 이내 승부를 볼수록 확률은 높아진다. 넷플릭스의 사례를 통해 도출한 기간"이라고 했다. 2016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2017년 '옥자'를 시작으로 기회를 모색하다 2019년 '킹덤'이 흥행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바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제휴전략'도 중요하다고 봤다. OTT 시장에서는 성인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가 중요한데, 디즈니플러스의 콘텐츠 카테고리는 이 지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분석이다. 김용희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콘텐츠 카테고리 확장을 위해 여러 브랜드를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며 "다양한 콘텐츠 브랜드와 제휴하는 전략이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외부 스튜디오와 협력하거나 혹은 각국 로컬 브랜드와 제휴를 통해 구작 콘텐츠를 수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는 의미다.
좁은 안방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보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사이, 새로운 도전자가 '혈전'에 참전할 것이란 예상도 해볼 수 있다. 웨이브와 왓챠, 티빙에 쿠팡플레이까지 수많은 토종 OTT 사업자들도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유료구독형 OTT 시장이 성장할수록 오히려 무료 OTT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면서 "아마존, 쿠팡 등 쇼핑 사업자나 통신 사업자들이 본업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는 OTT 플랫폼들은 계속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유료구독형의 토종 OTT 플랫폼이 생존하기 위해선 더 큰 '전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김용희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토종 OTT의 글로벌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 역시 해외로 콘텐츠를 수출해야하는 상황에서 토종 플랫폼에 콘텐츠를 계속 몰아주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OTT 산업 자체가 전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전쟁터가 됐다"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마련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선결 과제가 돼 버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자본력의 싸움'에서 뒤쳐지거나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인수되거나 폐지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출혈경쟁 속에서 자본력이 강한 사업자나 특정한 카테고리 킬러를 확보한 사업자만 살아남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혼자서 싸우기 어렵다면 같이 싸우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토종 OTT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로컬 OTT와의 제휴나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지역제휴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콘텐츠 사업자간 혹은 통신사와의 적극적인 제휴, 인수, 합병을 통해 글로벌 진출에 나서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가 죽고 한명만 살아남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문가들은 내놨다. 소비자 선택권과 편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국내 콘텐츠 제작사의 협상력이 떨어지고, 콘텐츠 유출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위험하다고 봤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본성"이라며 "압도적 1위 사업자가 시장을 지배하지 않도록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가격인상, 콘텐츠 동질화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면서 "국내 콘텐츠를 싼 값에 글로벌 플랫폼에 넘기는 '하청기지화' 우려도 현실화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아 기자 twenty_ah@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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