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MX사업부장 노태문 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MX사업부장 노태문 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개발할 것이란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전용칩 탑재 시점은 오는 2025년으로 거론되고 있고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다는 소식도 있으나 공식적으로 삼성 측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용칩 개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AP를 공급받던 애플은 이제 아이폰에 탑재된 'A' 시리즈에 이어 PC용 'M1'까지 개발하며 독자적인 '애플실리콘'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반면 갤럭시 제품에 범용 AP인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등을 탑재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애플과 성능을 비교당하며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이자 반도체 기업이기도 한 삼성전자 입장에선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플 전용칩 공세에 성능 경쟁 밀린 갤럭시

AP의 성능을 비교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긱벤치(Geekbench)'나 '3D마크(3DMark)' 등의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돌려보면 아이폰이 갤럭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기록합니다. 아이폰에 탑재된 A 시리즈 칩셋의 성능이 뛰어나서 일수도 있지만, '전용칩'이란 이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이폰만을 위해 개발한 칩이기에 최적화 측면에서 성능이 우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애플 M1 칩셋 라인업 /사진=애플 제공
애플 M1 칩셋 라인업 /사진=애플 제공

다만 이런 전용칩을 만들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그만큼 비싸게 만들어 많이 팔 수 있는 규모의 경제도 이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애플이니까 가능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애플은 노트북에 탑재하던 M1을 '아이패드 에어' 태블릿에도 넣고, 저가형 스마트폰 '아이폰 SE'에 최고 사양의 'A15 바이오닉' 칩셋을 탑재하는 등 반도체 역량을 마구 뽐내고 있습니다. 전에는 애플 제품을 '감성'으로 산다고 했는데, 전용칩 전략이 강화되면서 '스펙'도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동안 스펙에는 자신 있었지만 애플 제품에 비해 디자인이나 사용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던 삼성전자는 반대 입장이 됐습니다. 갤럭시 스마트폰은 'S펜', '삼성페이', '폴더블폰' 같은 독창적인 사용성을 정착시켰고, 디자인면에서도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는데, 정작 자신있던 스펙에서 애플에 밀리게 된 것입니다.


전용칩 개발은 당연한 흐름

올해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사태는 이런 삼성전자의 고민을 최악의 현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AP의 과도한 발열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GOS 기능이 부족한 하드웨어 성능을 감추기 위한 꼼수로 비쳐지면서 갤럭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입니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다보니 AP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고, 화살은 삼성전자가 개발한 '엑시노스' AP와 이를 생산한 삼성 파운드리까지 날아들었습니다.

삼성전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200'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200' /사진=삼성전자 제공

GOS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 내부에서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이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커스터마이징 된 갤럭시 AP 개발을 고민해보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갤럭시 전용칩에 대한 관심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범용칩을 가져다 조립만 해서는 애플과 경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 제조사들의 제품과도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위기감이 전용칩 개발의 배경으로 거론됩니다.

기술적 변화의 흐름 역시 전용칩 개발의 당위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애플 뿐만 아니라 구글도 자사 '픽셀' 스마트폰에 전용칩 '텐서'를 탑재했고, 오포, 샤오미 등 중국 제조사들도 조만간 전용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갤럭시 스마트폰 역시 이들과 차별화를 위해 당연히 전용칩 개발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입니다.


진짜 '전용' 칩일까?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그동안 왜 전용칩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구글 텐서의 경우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했고, 생산도 삼성 파운드리에서 했습니다. 구조 자체도 삼성 엑시노스 기반에 구글의 TPU(텐서프로세싱유닛)를 더한 형태입니다.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갤럭시 전용칩'이라 부를 만한 칩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달리 완성된 제품 뿐만 아니라 부품도 파는 회사입니다. 기왕이면 갤럭시에도 들어가고, 다른 제조사에도 팔 수 있는 칩을 개발하는 게 이득입니다. 갤럭시 스마트폰에 '스냅드래곤'을 공급하는 퀄컴은 삼성 엑시노스의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이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한 사업 구조 탓에 애플처럼 '우리가 만들어 우리만 쓴다'는 전략은 삼성에게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부품부터 제품, 서비스까지 완벽히 수직계열화 한 애플 생태계와는 다른 '열린 생태계'를 지향해왔습니다. 모바일 운영체제(OS)는 구글과 협업하고, PC와 연동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콘텐츠 품질을 높이기 위해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는 식입니다. 앞으로 모바일 제품뿐만 아니라 가전, TV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해 사용자 경험을 혁신하겠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는 삼성 입장에선 '전용'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MX사업부와 AP를 개발하는 시스템LSI, AP를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부가 보다 긴밀하게 협력해 갤럭시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AP 개발에 나설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걸 '전용칩'이라 부를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생태계 전략이 상이한 만큼 애플과는 다른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성은 최근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 계획을 발표하며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1등을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 중에는 고성능ㆍ저전력 AP를 개발한다는 목표도 담겨 있습니다. 공격적인 투자와 연구개발(R&D)을 통해 선두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어떤 형태로든 기존 엑시노스 이상의 제품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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