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결별한 뒤, 이준호 회장의 '오너 기업'으로 뚝심을 지켜오던 NHN이 주주친화 정책을 잇따라 내놔, 그 배경을 두고 이목이 쏠린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길고 긴 주가부진에 결국 경영진도 백기를 들고 기업가치 제고에 나선 것.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극심한 점도 경영진의 태도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사실 투자시장에선 NHN이 갖고 있는 핵심 자산이 시장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는 점을 주가 부진의 이유로 꼽는다. 80여개의 계열사, 300만명의 충성 이용자를 가진 페이코, 1조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도 '성장주 팽창기'에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것. 고작 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클라우드 사업부 분사로는 10년의 주가 하락 국면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너 기업인 탓에 외풍이 적었으나, 소액주주들이 들고 일어선 만큼 NHN의 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성장주 달릴 때, 나홀로 정중동...소액주주가 뿔났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NHN은 지난 21일, 전거래일대비 9.9% 오른 주당 2만9400원에 장을 마치며 시가총액 1.1조원선을 탈환했다. 6월 들어 순매수를 이어온 연기금이 이날도 2만주 이상을 사들이며 주가 방어의 1등 공신이 됐다.
앞서 NHN은 지난 20일, 300억원 가량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놨다. 올해 들어서만 400억원 이상 자사주 매입을 공식화한 것. 최근 3년으로 넓혀보면 800억원에 가까운 자사주 매입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길고 긴, 주가 부진 탓이다. NHN은 무려 10년전 주가인 주당 7만원선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멀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성장주가 코로나19 시기를 맞이해 '퀀텀 점프'를 일궜으나, 판교 테크노밸리 기업 중 유일하게 NHN 홀로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NHN은 지난 2015년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코를 통해 게임사를 넘어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기존 한게임 외에도 음원서비스인 벅스, 예약대행업체인 티켓링크, 결제지원(PG)사인 한국사이버결제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콘텐츠 트리'를 완성했다. 포털 네이버와 카카오톡처럼 중심이 되는 플랫폼 없이도 각 분야의 서비스를 페이코로 연결,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의 밑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덕분에 압도적인 이용자 데이터를 확보했으나, 정작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오랜시간 돈을 벌지 못한 카카오, 토스, 당근마켓 등 여타의 플랫폼 사업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같다. 후발 주자인 탓에 무리한 광고 비즈니스를 자제했고, 이에 따라 페이코를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비는 꾸준히 투입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3월, 신성장 동력인 클라우스 사업의 물적분할까지 구체화되자 주주들의 반발이 극심해진 상황이다. 일부 주주들은 최근 3차례 가량 이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일 만큼, 강성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판교 기업 중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NHN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오르고 있다.
계열사만 '80여개' 네이버-카카오 뒤따르는 NHN...보유 자산 강력해
지난 1분기 기준 NHN 매출액의 약 25%는 ▲한게임을 중심으로 한 게임사업 ▲42%는 페이코를 비롯한 결제와 PG 영역 ▲나머지 32%는 커머스와 콘텐츠, 클라우드 사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증권가 추산, 올해 추정 매출액은 2.2조원, 영업이익은 820억원 가량이다. 연결대상 종속회사, 이른바 계열사가 80여개에 이르지만 자산총계(약 3조원)에서 현금성자산이 6000억원에 달한다. 매출채권(약 3600억)과 기타금융자산까지 더하면 언제든 1조원 이상의 빅딜이 가능할 만큼, 내실이 탄탄하다. 실속 없는 문어발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업부 별로 살펴보면 게임의 경우, 국내 대표 웹보드 게임 사업자로 국내를 넘어 일본시장까지 상당한 이용자풀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지난 1분기 기준, NHN의 일본 매출은 약 800억원에 달한다.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코 또한 300만명의 충성 고객을 바탕으로,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이용금액은 무려 30.5조원에 이른다. 특히 PG사인 한국사이버결제는 페이코의 자회사로 약 15만개의 온라인 쇼핑몰을 포함, 30만개 이상의 오프라인 가맹점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국내 최대 PG사다.
숨은 자회사 NHN커머스 역시 '샵바이(shop by)', '고도몰5' 등의 쇼핑몰 솔루션을 앞세워 연일 덩치를 불리고 있고 국내 대표 협업툴 '두레이'와 NHN클라우드는 국내 공공 사업을 휩쓸고 있다. 특히 증권가에선 네이버-카카오에 밀리지 않는 NHN 모바일앱의 빅데이터에 주목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데이터 3법의 국회 통과와 금융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어, 데이터의 가치를 재평가해야한다는 의미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페이코의 지난 5월 순이용자(MAU)는 약 300만명으로 경쟁사 앱과 달리, 이용자 순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간편결제와 송금을 넘어 젊은 경제주체들의 금융 플랫폼으로 올라서며 토스-카카오페이에 밀리지 않는 외형을 갖췄다는 평가다. 예약 플랫폼 티켓링크의 5월 순이용자(모바일인덱스 기준) 또한 50만명에 달할 만큼, 시장 내 영업력이 상당하다. 음원서비스 벅스 역시 47만명의 MAU를 앞세워, 국내 톱5 사업자로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이들 모두 개별 사업자였다면 페이코는 조단위, 여타 서비스도 수천억원 규모의 몸값을 어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NHN의 투자 역량 또한 상당하다는 평가다. 최근 1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여가플랫폼 1위 사업자 야놀자의 지분 0.52%도 NHN의 몫이다. 지난 2016년 투자 당시 50억원 가량의 전환사채(CB)를 확보, 이중 일부 매도했으나 여전히 현 가치로 520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지분을 들고 있다. 데브시스터즈 매각 차익 또한 현주가를 염두에 보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에 투자업계에선 NHN이 핫한 사업 영역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제대로된 기업가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네이버 출신 경영진의 오랜 관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엔씨소프트와 같은 오너 기업을 제외하면,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10년 가까이 경영진이 장기집권하는 곳은 NHN이 유일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NHN이 가진 역량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액주주들은 주주환원책을 요구하지만,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경영진 재편 또는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외부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관련기사
- NHN페이코, 마이데이터 서비스 '페이코 자산관리' 오픈...2030 정조준
- [신년사] 정우진 NHN 대표 "유연한 수용과 발빠른 대응으로 정면돌파"
- NHN페이코, '페이코 자산관리'정식 오픈 이벤트...최대 3만 포인트 지급
- 인앱결제 방지법 덕분에...수수료 5% 이하 외부결제 서비스 나온다
- '페이코 복지 솔루션=직장인 복지 끝판왕', 도입 기업 1500개 돌파
- '전 부문 호조' NHN, 매출 2조원 눈 앞...올해는 게임 앞세워 '퀀텀점프'
- 다날핀테크, 금융투자본부 신설...글로벌 가상자산 결제 인프라 구축한다
- 다날 지난해 매출 2855억, 전년비 24.5% 상승...사상 최대
- "토스도 꺾였는데" 금융 얹은 NHN 페이코, 나홀로 훨훨...비결은
- NHN, 1Q 영업익 전년比 38% 줄었다...게임·클라우드 사업 '재정비'
- 매출 늘어난 NHN, 인건비·광고비 증가로 영업익 감소..."외연 확장 위한 장기 초석"
- ESG 힘주는 NHN...CEO 직속 전담 조직 신설
- [템터뷰] "국내 클라우드 시장, 결국엔 우리가 1등 할 겁니다" 김동훈 NHN클라우드 대표의 자신감
- [테크M 이슈] "게 섯거라 대형마트" 카카오로 새옷 입은 전통시장
- ESG 힘 주는 NHN...판교 유일 '착한 테크기업' 꿈꾼다
- '포커' '맞고' 과몰입 걱정마...네오위즈, 이용시간-구매한도 설정하는 '셀프 케어' 도입
- "게 섯거라 네이버웍스" NHN '두레이' 6월에도 폭풍성장...B2B 수요 UP
- NHN클라우드, '2022년 AI바우처 지원사업' 공급기업 선정
- "게 섯거라 네이버웍스" NHN '두레이' 8월 폭풍성장...사용시간 10% 껑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