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국내 신재생에너지 누적 설비용량이 사상 처음으로 30GW(기가와트)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1호기를 포함한 국내 원전 설비 24.65GW를 훨씬 웃도는 규모로, 최근 수년간 국내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는 변동성과 간헐성이 크다는 특징 때문에 일방적인 보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 실제 제주도는 전력계통망의 한계로 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이 2018년 15건에서 2022년 82건으로 증가했으며, 이제는 전라도 일부지역에서도 재생에너지 발전의 출력제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계에 직면한 국내 신재생에너지 보급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현실을 보자.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7% 내외에 머물고 있으며 이마저도 단기간에 보급되는 과정에서 산림 훼손, 중국기업의 시장잠식, 전력계통 불안정, 민원 증가, 정부정책 변화 등으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반영하듯 매년 증가하던 국내 신재생에너지 신규 설비는 2020년 5503MW에서 이듬해 19.07% 대폭 감소한 4454MW 보급에 그쳤으며, 에너지원별로는 풍력 60.2%, 바이오 58.8%, 태양광 16.1% 각각 줄어들었다. 급속하게 성장 중인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과는 반대로 올해도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은 더욱 위축돼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더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기업들에게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100% 사용해야 하는 RE100 캠페인, 자국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기업의 성과지표에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까지 고려하는 ESG 등이 주요 경영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길 원하고 있지만, 국내 사정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은 상황에 당면해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퀀텀점프 위한 'ESS'와 '섹터커플링' 기술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IT)과 자동차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우리는 이들 산업의 성장 과정을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육성 전략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1955년 처음 국내에서 제조된 '시발자동차'가 시작점이었으나, 실질적으론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이 기폭제가 되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됐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정부 주도로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국내 IT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지금 우리의 IT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전환점이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초고속 인터넷망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전력계통망'과 '유연성 자원'이다. 재생에너지의 출력제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계통 인프라가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에너지 저장 없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이 10%를 상회할 경우 전체 전력망의 불안정으로 인해 전력품질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ESS)은 재생에너지의 출력변동성을 완화시키는데 적합한 기술로, 재생에너지의 수용성을 증대시키고 예비력을 확보하며 출력변동에 따른 송전망 과부하를 해소시킬 수 있는 계통 인프라의 핵심기술이다. 현재 ESS 시장은 전기차 산업이 이끌고 있지만, 향후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전력그리드용 ESS 시장이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활용하기 위해 전력과 비전력 부문간 결합(Sector-Coupling)이 가능한 유연성 자원의 확대가 필요하다. 잉여전력을 열(P2H), 가스(P2H), 운송(V2G) 부문의 에너지와 결합하는 섹터커플링 기술은 유연성 자원의 핵심기술이다. 재생전력을 이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술과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메탄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대표적인 섹터커플링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실증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기술 확보가 시급하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한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강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가스와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에너지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에너지 고립 섬인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시키는 방법이지만, 전력 계통망의 안정을 위한 ESS 기술과 잉여전력 활용을 위한 섹터커플링 기술이 패키지로 개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에너지 안보에 취약해질 수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에너지 안보도 강화하기 위해 혁신적인 ESS 및 섹터커플링 기술개발로 국내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이 가속화되는 새로운 전환점을 기대해 본다. 


글=홍성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Who is...> 홍성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홍성준 책임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학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삼성SDI를 거쳐 2007년부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책연구실에 재직하고 있다.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과 에너지기술 시나리오 분석을 연구하고 있으며, 2015~2017년 정책연구실장을 역임하였고 2020~2022년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으로 근무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