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법부터 만들랴 과제 산적

#KYC 하나도 사업자 분리부터 근거 조항 마련해야

#모두 ISMS 해야 한다면 스타트업 어쩌나


내년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가상자산 거래소와 거래소가 아닌 사업자, 그리고 은행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이 참 많다. 특금법은 새로운 사업을 규정하고 진흥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 의심 거래를 포착하고 방지하기 위한 규제법에 가깝기 때문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고강도의 규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 관련 내용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개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 사진=금융위원회

다만 가상자산을 다루는 기업이 거래소뿐만 아니라 커스터디(보관), 지갑, 투자사 등 다양해, 어느 범주까지 AML 의무 대상일지는를 시행령에서 마련해야 한다. 특히 사업자에 해당되는 경우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와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입출금 계정을 발급받지 못하면 신고가 불수리될 수 있다. 


전통금융기관 수준 KYC 요구할까 


"금융거래 등을 이용한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나아가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률에 명시된 특금법 목적이다. 이를 근거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 주민등록번호 수집 의무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특금법 간담회에서 고선영 FIU 담당 사무관은 "(주민등록번호 수집에 대해) 특금법 취지를 고려해 줬으면 한다"며 "FIU은 의심 거래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이를 거쳐 필요시 검찰이나 수사기관에 정보를 제공해야 될 수 있어, 이때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면 자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가 회읜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황순호 두나무 대외협력팀장은 "거래 고객의 정보 수집의 근거 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당국이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요구한다면 수행 한계가 있다"며 "업계가 노력한다 해도 현행 제도상 어려움이 있어, 특금법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거래소가 실제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거가 마련된다고 해도 굳이 거래소가 아닌 가상자산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 기업까지 금융권에서 요구하는 고강도 KYC가 필요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소재 센트로폴리스에서 특금법 컨퍼런스가 열렸다.  / 사진=온라인 컨퍼런스 캡쳐 
1일 서울 종로구 소재 센트로폴리스에서 특금법 컨퍼런스가 열렸다.  / 사진=온라인 컨퍼런스 캡쳐 

이처럼 당국이 고강도의 KYC를 요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제 권고안의 여행규칙(트래블룰) 때문이다. 지난 6월 발표된 가상자산 관련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제 권고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포함 해당 사업자들은 가상자산 송수신에 필요한 발신자 정보와 수신자 정보를 수집 및 보유해야 한다. 사업자는 또 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사업자가 수신자 정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국제적인 기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여행규칙 부분은 업계 내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실현하거나 유보해달라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거래소 최대 관심사 '실명계좌' 


원화 마켓을 지원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입출금계정을 발급받는 것이 필수다. 거래소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은행이 실명계좌를 발급해 줄지는 시행령에서 마련된다. 

이 때문에 시행령이 나오기 전까지 시중은행이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기조가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인데다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오지 않아, 은행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는 실명계좌를 발급받기 위한 조건 기준의 '명확성'을 주목하고 있다. 기준 해석이 애매모호하거나 불명확하다면 '시중은행 판단'에 의해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원화를 다루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한정지어 실명계좌 발급 대상자를 정하고, 실명계좌에 대한 조건을 최대한 객관적이면서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마련되길 요구하고 있다.   


거래소 아닌 서비스 사업자는 금융 기관이 아니다 


거래소가 아닌 가상자산을 다루는 결제, SNS, 게임 등의 사업자들도 특금법이 걱정이다. 초기 특금법 개정안의 주안점이 '거래소'로 다소 기울어져있다보니, 당국 신고를 위해 요구하는 사안들이 비거래소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업계는 현재 당국이 신고를 위해 요구하는 ISMS 필수 부분을 지적한다. 이를 획득하기 위한 수개월이 소요되는 시간과 수천만~수천억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비용 또한 수억원으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ISMS 인증 기준 및 절차 / 사진=이상무 KISA 팀장 발표 자료 
ISMS 인증 기준 및 절차 / 사진=이상무 KISA 팀장 발표 자료 

1일 서울 종로구 소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특금법 컨퍼런스에서 이상무 KISA 팀장이 밝힌 ISMS 기준과 절차에 따르면, 인증을 받기까지 크게 준비(2개월~6개월), 심사(50일~60일), 인증(30일), 사후관리 등을 거친다. 특금법 개정안이 내년 3월 시행되면, 기존 사업자들은 시행 일자 기준 6개월 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이에 이상무 팀장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해당이 되면) 최대한 빨리 신청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ISMS 인증 신청 시점부터 최대 6개월이 소요될 수 있어, 법 시행되기 6개월 전에는 최소한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시행 6개월 전은 오는 10월쯤이다. 그전까지 특금법 시행령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다만 업계는 무엇보다 거래소가 아닌 사업자들에게 ISMS를 요구하는 것이 특금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ISMS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수억원들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 스타트업들이 이를 다 수용해야 한다면 한마디로 소규모로 블록체인 창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금처럼 고강도 요건을 강조한다면 자칫하다 '역차별' 현상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김 대표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블록체인 서비스를 대상으로 ISMS에 준하는 의무를 강제하는 곳은 없을뿐더러, 국내 고강도 요구사항 때문에 국내 거래소인데 해외 기업들이 내놓은 가상자산들이 거래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해외에서 개인 가상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프라이빗 키를 다루는 지갑 서비스업체들에게만 ISMS 의무를 주도록 명시한 것처럼, 국내 또한 시장과 기술 고민 등을 거친 시행령이 나와야 관련 개발자들도 국내에서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정은 기자 moon@techm.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