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반에선 '돌핀' 시계가 인기였다. 남자아이들을 설레게 한 건 100m 방수 기능이었다. 비록 수심 1.5m 수영장에서도 허우적대는 신세였지만, 돌핀만 차고 있으면 마음만은 이미 다이버였다. 세월이 지나 이런 아웃도어에 대한 동경을 담은 스마트워치가 등장했다. 100m 방수는 기본이고 아무리 춥고 더운 극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다는, 튼튼하면서 가장 똑똑한 시계의 등장이다.
애플과 삼성, 스마트워치 다리에서 만나다
스마트워치 시장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로 IT기기 수요가 급감하는 가운데도 지난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13% 성장을 거뒀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3개월 전 예상했던 하락세에 비해 비교적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시장은 9% 감소를 겪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의 액세서리 정도로 여겨지던 스마트워치 시장이 지금은 오히려 스마트폰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장에서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애플과 삼성 입장에선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카테고리가 됐다. 두 기업 모두 독자적인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 중이고, 스마트워치는 이 생태계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제품으로 꼽히고 있다.
애플의 '애플워치'는 선구자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여전히 30%에 가까운 막강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워치'는 비록 점유율 면에선 아직 한자리대로 애플에 크게 뒤쳐지고 있지만, 중국 화웨이를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서며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만큼 올해 스마트워치 신제품은 두 회사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이 최근 내놓은 새 스마트워치는 기존보다 훨씬 더 크고 투박하며, 대신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항상 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얇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IT 기업들이 내놓은 제품치고는 뭔가 이질적이다.
이들은 왜 굳이 투박한 시계를 내놨나
아이폰을 쓴다면 애플워치를, 갤럭시 스마트폰을 쓴다면 갤럭시워치를 쓸 확률이 높다. 스마트폰 점유율에 영향을 받을 순 있지만, 애플워치와 갤럭시워치가 직접적으로 서로 소비자를 뺏고 뺏기는 관계는 아닐 공산이 크다.
그럼 두 회사는 어디에서 점유율을 더 확보할 수 있을까. 이들 외에 꾸준히 점유율을 지키고 있는 제품 중에 '가민'이 눈에 띈다. 아웃도어와 스포츠, 피트니스 등에 특화된 제품을 주로 내놓는 가민은 애플과 삼성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확고한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가민 제품을 애플워치나 갤럭시워치보다 높게 보는 사람이 많다.
올해 애플과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내놓으며 나란히 아웃도어를 주목한 점이 흥미롭다. 두 회사 제품 모두 그동안 운동이나 건강관리 기능을 꾸준히 탑재해왔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만약 이들이 극한의 모험과 격한 야외활동에 특화된 제품을 내놓는다면 어떨까. 두 회사 외 다른 경쟁사의 점유율까지 더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해 실적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 등장한 게 바로 '애플워치 울트라'와 '갤럭시 워치5 프로'다.
아웃도어 향한 '열정'에 승부수 띄웠다
아웃도어 브랜드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자연에 대한 동경과 모험에 대한 열정으로 소비자들을 이끈다. 우린 등산이나 캠핑을 할 시간이 없어도 파타고니아를 즐겨 입고, 겨울이 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캐나다구스 패딩에 거액을 투자한다. 애플과 삼성은 그동안 도시인의 전유물 정도로 생각되던 스마트워치의 지평을 험악한 산과 깊은 바다, 극한 상황의 모험으로 확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교한 하드웨어와 최신 소프트웨어 대신, 모험을 향한 소비자들의 가슴 속 열정에 불을 붙이겠다는 심산이다.
애플은 애플워치 울트라를 소개하며 계속해서 한계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강조했다. 오지를 탐험하는 모험가, 기록에 도전하는 운동선수, 심해를 누비는 다이버들을 위해 제품의 내구성과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두툼한 티타늄 케이스, 정밀 이중 주파수 GPS, 최대 36시간의 배터리 사용 시간, 각기 다른 모험에 특화된 세 가지 전용 밴드까지, 애플워치 울트라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신 국내 출고가 기준 114만9000원이란 파격적인 가격을 갖게 됐다.
약 2년 전부터 앞 유리가 평평한 애플워치가 나온다는 루머가 있었던 만큼, 애플은 이 제품을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울트라'는 애플이 프리미엄 제품 중에서도 최상위 제품에만 붙이는 타이틀이다. 그만큼 제품의 콘셉트부터 하드웨어 스펙, 소프트웨어 지원까지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구석이 엿보인다. 고가의 다이브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누군가에겐 벌써 가성비가 높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이런 극한 환경에 도전하는 이들은 소수겠지만, 이런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제품을 멋지다고 느끼는 소비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애플보다 조금 먼저 갤럭시워치5 프로를 발표한 삼성은 인기 모델이던 '클래식'을 없애고 '프로' 라인업에 집중하며 이 시장에서 애플과의 정면승부를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러냈다. 덕분에 갤럭시워치5 프로는 강한 내구성과 향상된 배터리 수명으로 하이킹이나 사이클링 같은 아웃도어에 최적화된 제품을 애플워치 울트라의 절반도 안되는 49만9000원에 내놓을 수 있었다. 비록 갤럭시워치의 정체성으로 불리던 물리적 회전 베젤이 없어지고 체온 센서는 있으나 이를 활용한 기능은 없는 등 다소 준비가 미숙한 모습도 보였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갤럭시 사용자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제품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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