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것이다. 이별 휴유증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별을 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연애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이직 그리고 스포츠 선수 이적 등 다양한 이별에도 이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아직 이적 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e스포츠에서는 아름다운 이별의 사례를 보기가 어렵다. 특히 선수들의 연령대가 어리고 에이전트 시장이 좋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특히 T1에서 이적하는 선수들, 그것도 T1이 키워낸 선수들이라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거쳐야한다. 최고의 인기 팀인만큼 팬들의 엄청난 간섭과 비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제우스' 최우제가 한화생명e스포츠로 이적할 때 겪었던 잡음이 기억난다. 그를 보내지 못하는 T1 팬들의 억측을 비롯해 '제우스'와 T1 등 두 당사자 모두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를 보여줬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T1은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우승했던 2023년부터 연습생 시절을 거친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연습생 출신이 아닌 선수는 '케리아'가 유일할 정도다. 팬들 뿐만 아니라 게임단에서도 "우리 팀이 키운 선수"라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또 다시 롤드컵을 제패하고 결승전 MVP까지 가져간 '구마유시'가 이적 시장에 FA로 나왔다는 이야기에, 또 다시 지난 해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마유시'는 달랐다. T1도 더이상 붙잡지 못했고, 팬들도 눈물을 흘리며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구마유시는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모두 지켰기 때문이다.

'구마유시'는 올해 초,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냈다.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조마쉬 T1 대표가 자신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실언을 한 것. 이에 팬들은 대표가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 라인업에 개입한 것은 부당하다고 여겼고, 조마쉬뿐만 아니라 '구마유시'에게도 비난을 쏟아 부었다.

'구마유시'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근조화한을 보면서 연습실에 들어가야 했다. 그는 조마쉬의 입김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다시 꿰찼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T1은 헤맸고, 결승전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구마유시'는 팀을 캐리해 겨우 롤드컵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 롤드컵에서도 결승전 MVP를 획득하면서 전무후무한 3연패 주인공이 됐다.

그는 증명해냈고, 팬들은 떠나는 그를 차마 잡지 못했다. 올해 모든 비난을 떠안아야 했던 '구마유시'가 모든 것을 이뤄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의지를 전했을 때 어느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구마유시'는 재미있게도 '제우스'가 이적한 한화생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제 T1의 그늘이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비난하던 T1 팬들도 이제는 '구마유시'의 선전을 바라고 있다. 그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자신을 키워준 팀을 떠나면서도 모두의 박수를 받았던 '구마유시'. 그가 보여준 이별의 품격은 e스포츠 품격을 한층 끌어 올렸다. 앞으로도 이적 시장에서 폭로전보다도 이같은 품격이 자주 보여지기를 바라본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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