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존(김태린)님 /캐리커쳐=디미닛
스존(김태린)님 /캐리커쳐=디미닛

요즘은 하루만 차트를 안보면 세상에 뒤처진 것 같다. 주위에서 코인 투자를 몇 년 떠났다가 최근 복귀한 지인들 이야기도 속속 들려온다. 내가 사지 않은 알트코인들이 야속할 만큼 많이 올랐다.

주요 거래소 메이저 알트코인이 오르자 사람들은 '디파이(Defi)' 테마가 쏘아올린 공이 상승장을 만나 메이저로 옮겨 붙었다고 생각한다. 

디파이도 생소한데 이자 농사(Yield Farming)를 하면 잘 벌린다는 이야기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줄임말)'다. 일종의 신조어처럼 등장한 이 '돈벌이 방식'이 한철 '밈(meme)'일 수 있다는 시각은 진중한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속속 보인다.

언제나 사기꾼은 넘치고, 흥행은 타이밍과 운이 많이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현들은 뭐든 양쪽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셨다. 해당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은 무슨 의중으로 설계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던 찰나, 7월16일 이더리움 회의 커뮤니티인 이더리얼에서 실제 이자 농사 설계자들을 데리고 관련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웨비나를 했다.

국내는 아직 디파이 설계자가 부족해서인가, 설계자 입장에서의 고민들을 들을 시간이 딱히 없는데, 코인 시장에서의 패스트 팔로우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해당 웨비나 내용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이자로 농사를 어떻게 짓나?


현재 디파이라고 하는 테마의 프로토콜들은 상당수가 가상자산으로 하는 대출-예금, 그리고 거기다 레버리지 활용을 더하는 거래소 선물상품에 집중돼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나 담보가 가능한 토큰 등을 대출 자금 풀에 예치하거나, 거래소 유동성 풀에 예치하는 식으로 예치 행위를 할 때 그 결과로 해당 서비스의 자체 네이티브 토큰을 받게 되는 방식이다.

예치 행위가 필요한 점은 스테이킹과 유사하지만 결과가 블록체인의 보안성으로 이어지는 스테이킹과 달리 자금 풀에 들어간 금액의 증가와 사용자 유입 확대로 인한 시스템의 안정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농사 결과는 네이티브 토큰의 미래가 결정짓는다. 잘 오르면 풍년, 지출해야 하는 수수료나 이자 같은 일종의 경비보다 내리면 흉년이 된다. 월렛을 직접 사용해서 유동성 풀에 유동성 제공-예치를 반복하는 특징을 갖는다.

최근 밸런서(Balancer)라는 자동 마켓메이커(AMM) 서비스가 이자 농사의 둥지로 단연 핫하다. 밸런서는 자체 토큰인 BAL을 이용자가 토큰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대가로 지급한다. 컴파운드 토큰 흥행의 성지 역할을 한 커브(Curve)도 AMM 서비스로 역시나 자체 거버넌스 토큰인 CRV를 내놨다.

엠스테이블(mStable)의 MTA 토큰처럼 유동성 풀 위에 버티컬로 네이티브 토큰을 덤으로 배포하는 프로젝트들도 생기고 있다. 엄청난 수확량으로 화제를 일으킨 와이언 파이낸스(Yearn Finance)도 그 예다. YFI 토큰을 얻는 복잡한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디파이는 이미 여러 서비스간에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형성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한탕 폰지 모델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총 예치금액(Total Value Locked) 단순증대를 위한 단기적 모델이라 보는 세간의 시선과 달리 꽤나 장기적인 모델을 짠 서비스들도 존재한다.

중국의 맥덱스(McDEX)는 네이티브 토큰의 50%를 사용자 인센티브로 책정하고 1년 최대 분배량은 5%라고 했다. 즉 10년간 배포 계획을 짜되, 각 이자 농사 라운드는 단기적으로 짜는 정책을 사용해서 실험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밸런서 또한 거버넌스를 통한 완급 조절을 통해 9년간 지속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물론 커뮤니티에 '이 서비스는 매우 나쁘고, 미래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사건이 터진다면 계획과 달리 급속도로 망할 수 있기는 하다. 아베(Aave)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타니(Stani)에 따르면 기본적으로는 쌓이는 데이터들을 이용한 그로스 해킹 전략으로 갈 거라고 한다.

웨비나에서 '새로운 이자 농사 시장에 뛰어들려는 창업자'에게 주는 조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밸런서의 CEO 페르난도(Fernando)는 일종의 프리미티브(기본 구성단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밸런서를 개발해 나간다고 말했다.

AMM에서 풀은 사용하되, 그것을 가지고 네이티브 토큰을 발행하면서 아예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드는 서비스들이 쌓이고 있다. 심지어 그 서비스 위에 또 다른 서비스가 올라올 수도 있다. 또 현재 진행하는 내용에는 스마트 풀 구축도 포함되어 있다.

스마트 풀은 채굴 시장에서 나온 개념으로 새롭지는 않다. 디파이에서는 외부로부터 유동성을 얻고 모든 파라미터를 변경 가능한 매우 유연한 개인 풀을 의미한다. 수익성이 좋아지면 거래 수수료를 올리고, 진정이 되면 거래 수수료를 낮추는 방식으로 개인이 유연한 조절을 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앞으로 개별 토큰의 매수/매도/선물 기반 수익 모델만을 추구하던 시장에서 완전히 2.0 수준의 변화가 올 수 있는 상황이다. 풀 위에 서비스가 쌓이는 버티컬 확장은 사용자경험(UX) 발전과 함께 '파고들면 복잡하지만 쓰기는 간단한' 일종의 금융 상품과 비슷한 것들을 낳을 것이고, 고수익률이 함께 한다면 ICO(Initial Coin Offering) 시장에서의 부흥을 다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버티컬 확장이 더해질수록 이해는 어렵겠지만, 이는 설계자들이 UX만큼 걱정하는 요소는 아닐 것이다. 마치 우리가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세부 내역을 명확히 알지 못해도 수익률 기반으로 판단하고 자금을 넣을 수 있듯이,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니까.


세간의 우려도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자 농사는 결국 폰지 토큰을 또 발행한 것 뿐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많은 ICO 실패들에서 얻은 교훈들이 먹히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또 웨비나에서는 아크로폴리스 CEO 아나(Ana)가 설계 측면에서의 우려사항에 대한 언급을 했다. 단순 1토큰 1투표 거버넌스 모델은 필연적으로 도둑 정치(kleptocracy)로 이어진다며, 부유한 고래가 전체를 지배하고 설계 목적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에도 YFI 고래에 의해 토큰 인플레이션 안이 부결되는 등, 기득권 고래 친화적인 거버넌스가 디파이 영역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낯설지 않다. 장기적으로 소수의 서비스로 전락하면 목적과 다른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디파이에서 '커뮤니티의 외면'은 곧 망이다.

인스타댑(Instadapp)의 CEO 삼약(Samyak)의 말처럼, 이자 농사가 단순히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엔 아직은 어렵다. 디파이 시장이 가는 방향성의 좋고 나쁨이 결국 이자 농사에 대한 평가도 가르게 될 것이다.

한가지 가능성이 높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2017년 ICO는 가볍게 상회할 수익률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나올 것이고, 결국 투자자들은 디파이를 알든 모르든 찾아갈 것이란 것이다. 공부를 하고 대응할지, 일단 몸이 가는대로 반응할 지는 투자자에게 달렸다.

 

글=스존(김태린)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스존(김태린) 님은?
30대 회사원이자 약사다. 본업과는 동떨어진 블록체인 행사 정보를 공유하는 방을 운영하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2017년 불장에 아버지 추천만 덥석 믿고 이더리움, 일명 파더리움을 풀매수하고나서부터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2018년 야심차게 장투를 시작했던 모든 코인의 가격이 토막나는 시련을 겪었다. 물린 코인 공부할 겸 밥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밋업에서, 먹는 재미 듣는 재미에 홀라당 빠져 밋업 마니아가 되었다. 2019년 1월부터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블록체인 밋업 정보교류방'을 운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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