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소라 기자
/그래픽=이소라 기자

이번 시즌 카트라이더 리그 팀전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팀은 한화생명e스포츠(한화생명)였습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2연속 우승에 성공한 한화생명은 샌드박스 게이밍(샌드박스)에 이어 두번째 2연속 우승에 성공한 팀이 됐습니다.


결정적e장면... 테크M 11월 8일자 기사


항상 이야기를 풀어간 뒤 결정적e장면을 마지막에 공개했던, 전 시리즈와 달리 오늘은 결정적e장면을 먼저 공개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결정적e장면이 카트라이더 팀전 결승이 열리던 날 테크M을 통해 업로드 된 '예고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 8일 오후 12시경 업로드 됐던 테크M 기사의 제목은 '자신 만만 한화생명 vs. 설레지만 고민하는 락스'였습니다. 그리고 제목대로 한화생명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했고, 락스는 고민대로 아쉽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진=11월 8일자 테크M 기사 내용 캡쳐
/사진=11월 8일자 테크M 기사 내용 캡쳐

그리고, 박인재 감독이 결승전을 앞두고 털어놓은 고민이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 연출됐죠. 패하기는 했지만 박인재 감독이 경기 내적으로나 경기 외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진의 늪에 빠졌던 '배박 라인'


사실 결승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락스의 우승을 점쳤습니다. 8강 풀리그를 비롯해 포스트시즌에서 한화생명이 보여준 경기력이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결승까지 오기는 했지만 문호준이 '멱살'을 잡고 끌고 올라온 경기가 많았기에 더욱 그런 예상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특히 '01라인'으로 주목 받았던 배성빈과 박도현, 이른바 '배박 라인'의 부진은 한화생명 입장에서는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포스트시즌 내내 '배박 라인'은 스피드전과 아이템전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한화생명 배성빈(왼쪽)과 박도현/사진=이소라 기자
한화생명 배성빈(왼쪽)과 박도현/사진=이소라 기자

플레이오프에서 샌드박스를 상대로 '배박 라인'은 처참할 정도로 무너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피드전에서는 하위권을 맴돌았고 한번 사고에 휘말리면 앞으로 치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배박 라인'의 부진은 스피드전 완패로 이어졌고 강석인과 문호준이 각각 아이템전과 에이스결정전을 '캐리'하면서 겨우 결승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결승전 바로 전날 펼쳐진 경기에서 그야말로 '죽'을 쑨 '배박 라인'이 하루만에 컨디션을 회복했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플레이오프 경기력으로만 봤을 때는 락스의 우승이 당연한 듯 보였습니다. 


'배박 라인'을 꿰뚫어 봤던 락스 박인재 감독


그러나 락스 박인재 감독만은 달랐습니다.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테크M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감독은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배박 라인'이 무너졌으니 우승은 락스가 아니겠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성남 락스 박인재 감독/사진=이소라 기자
성남 락스 박인재 감독/사진=이소라 기자

"우리 팀 선수들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런데 딱 하나가 걱정이에요. 이상하게 한화생명 배성빈과 박도현이 우리 팀만 만나면 스피드전에서 날아 다니더라고요. 샌드박스와의 스피드전에서는 힘 한번 써보지 못했는데 아마 우리랑 할 때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한화생명 '배박 라인'이 네임밸류에 따라 실력이 다르게 나타나요. 우리팀 선수들의 네임밸류가 샌드박스 선수들보다 낮다 보니 긴장을 안해요. 아마 '배박 라인'이 결승 때 플레이오프와는 다른 플레이를 펼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사실 박인재 감독이 이같은 인터뷰를 할 때에도 기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샌드박스전에서 보여준 '배박 라인'의 경기력은 최악이었기 때문이었죠. 아무리 그들이 네임밸류에 따라 다른 플레이를 펼친다 해도 하루만에 사람의 경기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다며 핀잔을 주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던 기자는, 그래도 박 감독의 고민을 기사에는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예고를 작성했습니다. 기자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핀잔을 준, 그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말입니다. 


결승전 당일, 훨훨 날아 다닌 '배박 라인'


락스 박인재 감독의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결승전 1세트인 스피드전을 지켜보면서 내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인재 감독의 말대로 '배박 라인'이 마치 어제와는 다른 사람처럼 훨훨 날아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1세트 1라운드 초반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배박 라인'과 2위로 골인한 박도현/사진=중계화면 캡쳐
1세트 1라운드 초반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배박 라인'과 2위로 골인한 박도현/사진=중계화면 캡쳐

1세트 1라운드에서 박도현과 배성빈은 초반부터 이재혁을 끊임없이 견제하며 2, 3위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뒤쳐져 있던 문호준이 앞으로 치고 나올 수 있도록 속도를 늦췄고 결국 박도현은 문호준과 1, 2위로 결승전을 골인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한 것은 '배박 라인'이었습니다.

1세트 3라운드에서 '러너' 역할을 하고 있는 배성빈/사진=중계화면 캡쳐
1세트 3라운드에서 '러너' 역할을 하고 있는 배성빈/사진=중계화면 캡쳐

3라운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성빈이 일찌감치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러너' 역할에 몰두했고 문호준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줬죠. 최영훈이 뒤로 밀리자 박도현은 중위권 라인을 휘저으며 락스 선수들이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4라운드에서 문호준을 호위하는 박도현/사진=중계화면 캡쳐
4라운드에서 문호준을 호위하는 박도현/사진=중계화면 캡쳐

4라운드는 박도현의 쇼타임이었습니다. 문호준이 러너로 치고 나가자 박도현은 상대팀 에이스 이재혁을 집요하게 견제했습니다. 이재혁이 역전을 위해 인코스를 파고들면 이를 잘 막아내면서 문호준을 잘 보필했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박도현의 멋진 디펜스 장면이었습니다. 

5라운드에서 1, 2위로 골인하는 박도현과 배성빈/사진=중계화면 캡쳐
5라운드에서 1, 2위로 골인하는 박도현과 배성빈/사진=중계화면 캡쳐

마지막 5라운드에서 박도현과 배성빈은 아예 둘이 원-투(1, 2위를 모두 휩쓰는 경우를 일컬는 말)를 해버렸습니다. 이게 얼마만의 원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결승전에서 훨훨 날아 다니며 팀에게 스피드전 완승을 선물했습니다.


문호준은 몰랐지만 박인재 감독은 알았던 '배박 라인'의 정체


박인재 감독의 걱정대로 '배박 라인'은 락스 선수들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팀이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만약 결승 상대가 샌드박스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플레이오프 때처럼 '배박 라인'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상성은 없다고 믿었던 문호준마저도 이번 결승이 끝나고 나서는 "정말 상성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인정했습니다. 그조차도 전날과는 완전히 다른 몸놀림을 보이는 '배박 라인'이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박인재 감독이었지만, 단기간 내에 자신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한화생명 선수들을 극복하는데는 어려움이 었었던 것 같습니다. 락스 선수들과 우승 트로피를 들고 싶다던 박인재 감독의 꿈은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박인재 감독만이 '배박 라인'의 정체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죠. 경기가 끝난 뒤, 2연패를 거둔 한화생명보다도 이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 박인재 감독이 먼저 떠오른 것은, 그의 분석 능력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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