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카드사, 보험사 할 것 없이 여의도 금융권의 플랫폼 견제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과의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금융사가 상품을 공급하는 제조사로, 플랫폼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플랫폼 종속론'은 금융 소비자는 배제된, 금융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주장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흔들리지 않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인 변화나 경쟁력 제고에 대한 노력 없이 플랫폼 견제구만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토스 무서워? 시중은행이 대환대출 거부한 이유
올해 금융위원회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10월 출범을 목표로 했던 '대환대출 플랫폼'이다. 이는 더 좋은 금리의 상품으로 대출을 편리하게 갈아탈 수 있도록 해 금융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공급자 중심의 대출 상품을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역시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이 악화됐으나 재기 가능성이 있는 자영업자에게 고금리 대출을 장기상환 저금리 대출로 대체하는 대환상품을 제공하는 등 정책금융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정작 대환대출 서비스에 핀테크 플랫폼 참여가 결정되자, 기존 은행권의 반발은 거세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출 상품을 공급하는 은행과 대출 상품을 비교하는 서비스를 제공중인 플랫폼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상했으나, 은행권은 이렇게 될 경우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며 여러 이유로 기준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달 금융위는 은행연합회와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과 대환대출 플랫폼 관련 회의를 열어 인프라 구축 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하기로 협의했다. 은행권의 반발에 당국이 사실상 굴복한 셈이다. 소비자 편익보다 기득권 보호를 택한 셈.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안착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은행 입장에서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은행이 거부하는 것은 경쟁력을 올리려는 노력보다 대출 상품 비교 서비스로 지금까지 지켜온 시장 점유율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속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20년간 고정된 대출시장 점유율...고인물에게 경쟁은 없다?
그간 국내 금융사 상위 6개사는 지난 20년간 전체 대출시장 약 80%를 점유해왔다. 대출은 은행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밥그릇'으로, 지난 20년간 대출시장 점유율은 무너지지 않는 아성을 지켜왔다.
실제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및 NH농협∙IBK기업은행 등 대형∙준대형 은행 6개사가 지난 2001년부터 작년까지 20년간 지켜온 대출시장 점유율은 평균 78.6%에 육박한다. 특히,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단 4개사가 대출시장의 약 55%를 공고하게 지키고 있다.
반면, 지방은행은 20년간 단 한 번도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한 2017년 이후 4년간 평균 점유율은 시중은행(4개사)가 53.9%, 특수은행 (5개사) 33.5%, 외국계은행 (2개사) 3.3%, 지방은행(6개사) 8.7%, 인터넷전문은행(2개사) 0.8%로 추정된다.
이처럼 상위 6개사가 20년간 대출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동안 은행 서비스를 이용해온 행태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주거래 은행을 하나 열면 월급 통장과 수시입출금통장, 예적금, 대출 등 모든 금융 상품을 하나의 은행에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금융 소비자들은 주거래 은행 창구에서 알려주는 정보에만 의존해 본인의 자산을 관리해왔다.
은행들이 대환대출 플랫폼을 거부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는게 핀테크 업계의 지적이다. 기존의 영업 행태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출의 경우 대부분 해당 은행에 월급 통장이 있거나 발급 카드를 이용할 경우 금리 혜택이 올라가게 되므로 여러 은행의 점포를 하나하나 발품 팔아서 금리와 한도를 비교해보는 행위 자체가 적었다"며 "하지만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대출 상품 비교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고착화된 은행 이용 행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과 제휴된 수십 개 금융사의 대출 상품을 모바일 내에서 2~3분만에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 소비자들은 주거래 은행보다 금리와 한도 혜택이 더 좋은 다른 금융사가 있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그간 공급자인 은행이 주는 정보에 의존해서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던 금융 소비자들이 플랫폼 안에서 여러 정보를 비교한 후 최적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금융 소비자' 배제된 플랫폼 종속론…서민들은 괴롭다
대형-준대형 은행들이 대환대출 서비스를 거부하며 주장하는 '플랫폼 종속론'에는 무엇보다 금융 소비자의 권익이 배제됐다는게 이용자들의 반응이다.
최근 신용대출을 구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소비자는 다양한 정보를 얻어 비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나, 은행들의 주장은 시장 점유율을 깨지 않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환대출 플랫폼에 중금리 대출 상품만 제공하겠다거나 현재 대출 상품의 금리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실제 시장을 공고히 지키고 있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에도 온도차가 적지 않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점유율이 유지되던 주요 먹거리 사업이 이제 상품 경쟁력을 높여야 지킬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는 것이지만, 지방은행 입장에서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물리적 거리로 한계가 있었던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핀테크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고객층을 강화할 수 있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보다는 소비자의 권리를 가로막으면서 지금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겠다는 시중은행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며, 건전한 경쟁을 통한 금융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내려면 상위 6개사가 대출시장을 독식하는 구조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관련기사
- [IT진맥]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심사가 있기를
- 비트코인 대중화 이끈 업비트...韓 1호 사업자로 '우뚝'(종합)
- [글로벌] 中, 법정 가상자산 '디지털위안' 도입...동계 올림픽 여행객 공략 나선다
- [카카오를 위한 변명] ②카카오는 독과점 공룡? 알고보니 절대우위는 없었다
- 도현수 프로비트 대표 "코인마켓 전환 후 거래량 95% 줄었다"
- [국감 2021 미리보기-블록체인] 뜨거운 감자 '실명계좌'...국감서 실마리 찾을까
- '파격 대출 커밍순' 토스의 원앱 전략...뱅킹 얹어 더 세진다
- 대출 난민 토스뱅크로? 은행 띄우는 토스...9월 이용자 역대 최고치
- "지금은 뱅킹커머스 시대" 카카오뱅크 적금에 MZ가 열광하는 이유
- 토스뱅크 출범했는데...'대출 중단' 암초에 MAU 감소, 파격혜택은 부담으로
- [플랫폼 종속론의 그늘](중) 호구들의 늪 자동차보험..'빅4' 독점 이유 있었다
- [플랫폼 종속론의 그늘](하) 카드업계 카르텔을 아시나요? '동일기능 동일규제'의 역설
- 토스뱅크, '입사 1주년' 임직원 대상 스톡옵션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