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테크M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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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공지능(AI) 전쟁이 발발했다. 지난해 오픈AI가 내놓은 대화형 AI챗봇 '챗GPT' 파장이 거세게 일며 전세계 산업 지형도가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시장을 뚫어내기 위해 골몰하던 메모리 반도체 업계 또한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AI에 주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영향이다. GPU 내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성능 D램이 대거 탑재된다. 업계에서는 챗GPT로 인한 AI 관련 수요가 반도체 산업 조기 반등을 실현할 '핵심키'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중이다.


'주춤'한 서버 수요에 D램 시장 회복 지연

글로벌 거시환경 악화로 지난해 반도체 업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해도 서버용 D램 시장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각종 리스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데다,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CSP)들이 서버 조달 물량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서버용 D램 시장에서 DDR5가 차지하는 비중을 기존 28%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이 기관은 올해를 DDR5 확대의 원년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말 옴디아는 올해 서버용 D램 시장 내 DDR5 비중을 ▲1분기 15% ▲2분기 24% ▲3분기 32% ▲4분기 40% 등 지속 확대될 것으로 분석했다.

인텔 '사파이어 래피즈' 주요 성능/사진=김가은 기자
인텔 '사파이어 래피즈' 주요 성능/사진=김가은 기자

그러나 최근 보고서를 살펴보면 옴디아는 DDR5 비중을 ▲1분기 3% ▲2분기 8% ▲3분기 15% ▲4분기 24%로 재조정했다. 이유로는 서버 시장 회복 지연을 들었다. 

주요 원인으로는 크게 3가지가 꼽혔다. 먼저 메타, MS,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주요 CSP사들이 서버 조달 물량을 축소했다. 또 전세계 각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력 효율, 재생에너지 사용 관련 규제 등을 내걸며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인텔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가 지연된 점도 여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D램 시장 매출을 견인하는 서버 수요 회복이 늦어지면 반도체 업계 반등도 지연될 수 밖에 없다"며 "현재 업계에서는 사파이어 래피즈 보급 속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인텔 측에서 또다른 신제품 '에메랄드 래피즈' 출시를 발표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파이어 래피즈 확대는 다소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AI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반도체 업계는 최근 챗GPT 열풍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AI가 전세계 최대 화두로 떠오르며 관련 인프라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시스템 운용을 위해서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하다. 이 GPU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D램이 함께 탑재된다. 즉, AI 시장 규모가 커질 수록 메모리 반도체 수요 또한 동반 상승하는 구조다. 

HBM은 D램 단품 집적회로(다이)를 쌓아 용량을 키움과 동시에 한번에 구멍을 뚫어 연결하는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데이터 전송률을 크게 높인 제품이다. 그간 고성능 컴퓨팅(HPC)나 GPU 기반 딥러닝 기기 등에 필요한 데이터 고속처리를 목적으로 도입돼왔다. 

특히 HBM은 기존 D램이 보유한 데이터 전송 속도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메모리 제품으로 꼽힌다. 비약적 성능 발전을 이뤄온 CPU, GPU와 메모리 간의 성능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DDR5가 대략 초당 50기가바이트(GB)를 전송할 수 있다면, HBM3는 초당 819GB를 전송할 수 있다. 약 40배 차이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여기에 반도체 업체들이 매출처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간 서버향 매출은 클라우드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AI가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만큼 향후에는 AI에서도 서버향 매출이 확대될 여지가 크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2020년 220억달러(약 27조원)였던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오는 2026년 861억달러(약 10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AI 시장 선점을 위한 대비를 마쳤다. 우선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글로벌 팹리스 기업 AMD와 메모리 반도체, AI프로세서를 결합한 '지능형 메모리(HBM-PIM)' 기술을 개발했다. '지능형 반도체(PIM)'은 메모리 내부에 연산 기능을 추가한 반도체로, CPU와 메모리 간 데이터 이동이 줄어 시스템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네이버와 AI 반도체 솔루션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국내외 주요 기업들과 메모리 생태계 확장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사진=SK하이닉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또한 지난해 6월 이후로 엔비디아에 'HBM3'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HBM3는 지난 2021년 SK하이닉스가 개발한 4세대 제품으로, 풀HD급 영화 163편을 1초만에 전송할 만큼 빠른 속도를 구현한다. PIM 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D램 규격 GDDR6도 개발했다. GDDR6는 기존 대비 연산 속도는 16배 빠르고, 에너지 소모량은 80% 적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는 업계 전반으로 확장 가능성이 크고, 서비스를 위한 학습 과정에서 향후 텍스트 뿐만이 아닌 모든 데이터 형식을 커버하는 멀티모달AI로 진화할 것"이라며 "이에 학습과 추론을 위한 서버 인프라 투자 확대가 필요하고, 특히 메모리 관점에서는 속도와 용량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현재 HBM과 같은 고대역 베모리는 곧바로 활용되고 있다"며 "기존 서버 메모리 중 128GB 급 이상 모듈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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