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 개설…무역·금융이 번창하면서 황금기 시절 구가
네덜란드 핀테크, 탄탄한 디지털 인프라 및 신기술 도입으로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핀테크 산업 규모 및 VC 투자 순위 세계 최상위 수준 유지, 유럽 금융허브로 인정

김정혁 님 / 캐리커처=디디다컴퍼니 제작
김정혁 님 / 캐리커처=디디다컴퍼니 제작

"비에 젖은 사람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653년 거친 풍랑에 난파돼 표류하던 무역선이 구사일생으로 제주도 차귀진 해안에 상륙했다. 생존자 36명은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된다. 2년 동안 심문과 노역 끝에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은 전라 좌수영인 여수로 수용돼 깊어가는 타향살이 설움과 고난의 긴 시간을 보내다 배 한 척을 구해 캄캄한 여수밤바다를 혼신의 힘으로 빠져나간다.

예기치 못한 조선과의 운명적 만남이 13년 억류로 이어지고 마침내 탈출을 감행한 하멜은 암스테르담으로 귀환해 보고듣고 느낀 조선의 실상을 주관적으로 기록했다. 이것이 '하멜 표류기'다. 당시 유럽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하멜 표류기는 프랑스, 영국에도 번역돼 조선에 대한 입소문과 관심을 이끌어낸다.

암스털강 하구 습지에 위치한 작은 어촌에 댐을 쌓고 간척사업을 시작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최대 무역도시와 곡창지대로 성장하고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기술로 대항해시대의 거점이 됐다. 암스테르담은 아프리카,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항구이자 왕성한 무역으로 재화를 거둬들였다. 이후 근대적인 상업단지로 발전하면서 유럽 최대 도시로 부상했다.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한 다국적 기업인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가 최초로 설립된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도 개설하면서 무역과 금융이 번창하고 막대한 수익과 부를 창출한 황금기 시절을 구가하였다. 거대한 댐으로 바다를 막아 생긴 바다호수로 찬란했던 중세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거듭나던 암스테르담은 지금도 당당하고 질서정연하게 글로벌 통신망 허브와 다국적 금융네트워크를 관통하고 있다.


유럽의 금융소비자, 사용자 중심 스마트 결제 플랫폼에 빠져들어

인류 최초의 주식시장이었던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유례없는 초거대 핀테크 기업이 탄생했다. 네덜란드 금융회사들의 시가총액을 앞서고 유럽 전체 핀테크 기업 중 투자규모와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인 아디엔(Adyen)이 그 주인공이다. 2006년 암스테르담에서 창업한 아디엔은 세계 온라인 결제 시장에서 안정된 플랫폼과 다채로운 솔루션을 기반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온라인 뱅킹과 디지털결제 서비스 제공을 통해 유럽 시장은 물론 북미와 아시아에서도 통합된 디지털금융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스타트업 아디엔은 대형 은행과 전통 신용카드사가 쌓아 올린 장벽을 허물고 에어비앤비·우버·넷플릭스·스포티파이 등과 제휴하며 중단 없는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획일적인 사용자 계정 로그인과 통상적인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고도 기술적 인증만으로 간편결제를 처리함으로써 사용자들은 새롭고 현대적인 경험에 매료되고 있다. 또한 엔드투엔드(end-to-end) 결제와 머신러닝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기능을 가맹점에 제공하면서 거래 승인률과 결제 완결성을 더욱 향상시키고 있다. 

느리고 더딘 기존의 결제방식과 늑장 대응에 표류하던 유럽의 금융소비자는 사용자 중심의 포용적이고 단순화된 스타트업의 스마트 결제 플랫폼에 주저 없이 빠져들고 있다. 아디엔과 같은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한 네덜란드 핀테크 생태계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원동력은 고품질의 탄탄한 디지털 인프라와 적극적인 신기술 도입에 대한 거센 파도와 같은 열정이다. 

동인도 회사를 기반으로 세계 최강의 해상무역을 주름잡으며.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을 꽃 피우고 유럽 최초의 중앙은행을 설립한 네덜란드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 핀테크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신기술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금융결제 시스템이 성장하고 테슬라·넷플릭스·우버 등 차세대 글로벌 혁신기업들이 암스테르담에 뿌리를 내리면서 신 디지털 경제와 차세대 핀테크 혁신을 견인하고 있다.


ICT산업 및 IT서비스의 연평균 성장률 각각 4%, 7% 넘어

올해 네덜란드 통계청에서 발표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정보통신(IT) 서비스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4%, 7%를 넘어서고 연구개발(R&D) 투자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3년 3월에 통과된 디지털정부법(Digital Government Act)은 네덜란드 국민과 기업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정부 플랫폼 이용을 보장하고, 개인정보보호법(The Personal Data Protection Act)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 저장, 활용에 대한 명확한 업무와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33년 만에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 예산이 일괄 삭감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우리나라 ICT 산업은 중장기 투자전략의 타격은 물론 당장의 이공계 교수학생들의 의욕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 과학기술의 심장이 멈추고 존중받지 못하는 IT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은 하멜의 난파선만큼이나 훼손되고 표류하고 있다.

이제 세계 최고의 미래 먹거리 상권과 디지털 혁신 댐을 쌓아올린 암스테르담에 둥지를 튼 수많은 핀테크 기업과 전통적인 금융회사 그리고 꿈을 향해 물살을 가르는 테크기업들은 세상에 없던 혁신을 만들기 위헤 디지털 대항해시대에 아낌없는 투자와 연구개발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자본과 금융을 다루는 기술이 남다르고 IT인프라 운영이 뛰어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에 매혹적인 핫플레이스 암스테르담을 보유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 규모와 벤처캐피털 투자 순위도 세계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금융허브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세계 최강의 사이버보안과 스마트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미래 혁신을 주도할 스마트 산업과 첨단 기술간 긴밀한 융합을 뒷받침해주는 네덜란드 정부의 든든한 R&D 인센티브는 암스테르담의 신항로 개척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네덜란드, 월드 클래스 디지털 역량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환경 누려

독일·프랑스·영국과 같은 유럽의 강국들에 속에서 오랜 외세의 지배를 끝내고 바닷물을 막고 이민을 장려하면서 과학기술과 무역을 발전시켜 17세기 해상 강국으로 이룬 네덜란드는 언어적, 인재적, 규제적 실리를 추구하며 혁신을 가미한 월드 클래스 디지털 역량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누리고 있다.

모진 풍파와 세찬 비바람에도 살아남고 기나긴 억류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던 하멜. 낯선 땅 조선에서 더 이상 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큰 역경을 이겨내면서 기적적으로 도착한 곳, 바로 그 암스테르담은 배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운하도시가 됐다. 

오늘 밤에도 암스테르담에는 하이네켄의 붉은 별처럼 진한 맛향과 고흐의 빛나는 별밤이 소용돌이치는 현실과 미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미 다가온 디지털 항해시대의 튤립 꽃망울이 하나둘 흔들거리고 있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대우증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은행을 거쳐 현재 글로벌 디지털뱅킹 기업 한패스의 감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로 핀테크보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와 가천대 컴퓨터공학과 블록체인 개론을 맡고 있다. 디지털금융법포럼 금융보안·정보보호 분과위원장, 한국핀테크학회 핀테크보안연구회 위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와 블록체인포럼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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