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이탈리아 북부 최대의 산업도시이자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
전통과 현대적 감성문화 예술에 디지털 테크놀러지 결합...중세 부흥 다시 꿈꿔

김정혁 님 /캐리커처=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처=디미닛

"내 한숨이 잠시 동안 그녀의 한숨과 섞인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어요."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2막의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거절당한 청혼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가난한 농부의 간절한 한숨을 쏟아내고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가 완성한 '사랑의 묘약'은 1832년 5월 12일 밀라노의 델라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초연됐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생전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맡았던 수많은 배역들 중 가짜 사랑의 묘약을 마신 농부 '네모리노'를 가장 사랑했다. 파바로티의 가슴 벅차오르는 감정과 아름다운 선율의 감미로운 음색은 이제 비대면으로만 감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원조 발상지이자 종주국이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래와 춤, 연기 콘텐츠가 무대 위에서 문학과 철학 매트릭스가 발산하는 대체 불가능한 예술 장르이다. 오랜 기간 통일되지 못한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합한 것도 창조적 오페라의 자긍심과 감수성일 것이다.

유럽 전역보다 오페라 전용극장이 더 많은 이탈리아는 밀라노와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로마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오페라 문화가 성장했다. 지금도 이탈리아산 오페라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계 각국에서 제작과 공연을 전하고 있다. 오페라가 이탈리아를 만들었다면 낭만주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오페라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창시자이다. 어린 시절 밀라노에서 갖은 역경을 딛고 최초의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 세계 금융의 발상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통해 저항과 투쟁을 불태우며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에 힘을 보탰다. 통합과 사랑을 꽃피우는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는 세계 금융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에 기독교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했다. 이슬람도 이자를 받아 부를 증식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유태인 무역상들이 베니스 거리의 벤치에 앉아 탁자 고리대금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당시 자연스러운 은행업의 시작이었다. 

약방을 운영하던 메디치 가문은 돈을 모아 직물 교역을 시작으로 부를 쌓아가면서 세상에 없던 금융업을 일으킨다. 르네상스를 정점으로 교황과 황족을 배출한 메디치 가문의 번창도 금융이라는 돈의 위력이었다.

1472년 세계 최초의 은행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몬테데이파스키 디시에나 은행'은 400여년 역사의 갈림길에서 탄탄히 성장해 1999년 밀라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다. 

이탈리아에서 창업한 은행은 흥행 입소문을 타고 유럽의 도시로 확장되면서 근대적 금융산업의 씨앗이 됐다.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금용 용어들도 이탈리아 어원에서 유래하고 있다.


유럽 최대 핀테크 스타트업 탄생을 계기로 존재감 뽐내 

최근 유럽에서 보기 드문 글로벌 핀테크 공룡 기업이 출범했다. 밀라노에 본사를 둔 금융결제기업 넥시(NEXI)는 결제플랫폼업체 시아(SIA)와 21조원 규모의 합병을 통해 유럽 최대 핀테크 기업으로 올라섰다. 온라인과 모바일이 결합한 디지털 인프라로 무장한 넥시는 경쟁업체인 덴마크의 모바일카드 앱을 운영하는 네츠(Nets)를 10조원에 인수한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개발에도 참여중이다.

그동안 핀테크 무대에서 월드 클래스가 없었던 이탈리아는 유럽 최대 핀테크 스타트업 탄생을 계기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제 이탈리아는 오페라와 은행에 이어 기술과 혁신의 핀테크 매트릭스로 또 다른 혁신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는 디지털 금융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밀나노발 전략적 빅테크 융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탈리아 북부 최대의 산업도시이자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인 밀라노는 관광객 보다 비즈니스맨이 넘치는 도시이다.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밀라노 컬렉션에 수많은 유명 브랜드가 유입되고 있다. 전통과 현대적 감성문화 예술에 최첨단 디지털 테크놀러지가 결합되면서 풍족해진 밀라노는 중세 부흥을 다시 꿈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밀라노의 라스클라 극장은 성악가들이 꿈꾸는 데뷔 무대이자 오페라의 메카이다. 가장 유럽적인 문화예술의 도시 밀라노는 디지털 이노베이션 축포를 쏘아 올렸다. 


경제 바로 세우기 위해 신생 스타트업 창업 지원에 매달려

페라리, 프라다, 구찌, 람보르기니 등 고급 브랜드들이 즐비한 이탈리아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고용률로 청년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경제위기를 넘어 침체기로 몰락한 이탈리아 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신생 스타트업 창업 지원에 매달리고 있다.

기술혁신형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정보통신기술(ICT)분야의 스타트업이 대폭 증가했다. 온라인으로만 설립이 가능하고 설비 대여와 연구개발비 지원으로 창업 생태계를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스타트업 비자 발급을 통해 외국인에게 자국내 활동을 보장해주고 있다. 수많은 청년 창업가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경쟁은 또 다른 월드컵 제패를 향하고 있다

세상에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기술역량을 집약하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기술과 혁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덩치의 합병은 관객의 박수를 기대하긴 어렵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애절함이 없이는 사랑도 이룰 수 없고, 앵콜도 재계약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랑의 묘약'으로 무려 167번의 커튼콜을 받은 파바로티의 기록은 언젠가 깨지더라도 밀라노의 기술혁신은 몰락한 이탈리아 경제와 금융을 다시 부활시킬 것이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한창의 디지털전문위원으로 블록체인, 디지털화폐, 디지털자산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학과에서 핀테크,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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