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기로에 선 홍콩, 외형은 지속되고 있으나 국제금융 허브의 매력 주춤
코로나 이후 홍콩 금융업계는 기술혁신을 채택한 핀테크 생태계 촉진중
디지털금융 주류는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스타트업과 IT기업

김정혁 님 /캐리커처=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처=디미닛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못할 겁니다. 깊은 관심으로 새로운 역사의 미래를 지켜볼 겁니다."
 
찰스 왕세자의 목 메인 고별사는 밀려드는 어둠속으로 흩어져 나갔다. 이스트 타마르 해군기지를 찬란히 휘감던 유니온 잭 영국기와 홍콩정부기는 155년 만에 역사의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영제국의 식민통치를 마감하는 홍콩의 주권 반환식은 무거운 빗방울이 내리는 가운데 비장한 오케스트라와 불타오르는 용춤이 잔잔한 파도를 출렁거렸다.

1997년 7월 1일 자정을 기해 대륙의 인민해방군은 수심 깊은 홍콩 섬으로 조용히 진입했다. 홍콩의 자유와 번영을 유지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지키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은 지나간 시간, 돌아온 공간의 이질적 매트릭스 운영체제를 강하게 움켜쥐려는 맹약이기도 하다.

동방의 진주로 불리는 빅토리아 항구는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힌다. 구룡반도와 홍콩 섬 사이에 위치한 이 천혜의 자연항은 영국 해군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빅토리아 항구로 개명돼 사용 중이다.

긴 세월 통치를 뒤로하고 영국 군함이 철수한 빅토리아항을 둘러보는 왕세자의 뒷모습에 식민주의 종식과 일국양제의 불안한 서막이 동시에 투영되고 있었다. 흑백 냉전 이데올로기와 동서양의 문화 매트릭스가 환하게 비추는 섬 홍콩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본주의 경제 구역으로 국제무역 중심지이자 가장 현대화된 금융도시이다.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선택됐던 홍콩은 지리적 입지로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극한 사투로 치달은 국공내전은 상해의 금융 인력과 자본이 홍콩으로 밀려오면서 금융친화적 스카이라인을 쌓아 올렸다.


자유로운 경제활동, 낮은 세율, 규제 간소화로 세계 3대 금융 허브 등극 

그간 홍콩의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영업과 파생적인 구조화 상품이 잘 보장돼 왔다.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낮은 세율에 매료된 외국계 투자은행은 홍콩 역내 은행에 100% 지분 참여와 간소화된 규제를 십분 활용해 세계 3대 금융 허브로 발전시켰다. 

역사적으로 국제금융센터의 탄생과 성장이 지속되려면 그 지역의 사회적 안정과 지리적 특수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권 반환 이후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시민불복종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존무상 금융본색이 퇴색하고 있다. 홍콩 시민은 지금의 정치적 분쟁이나 우산혁명과 같은 민주적 항거조차 홍콩을 파멸의 길로 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과거 홍콩인들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투명한 정책, 문화적 우월감은 경제 발전은 물론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글로벌 금융센터를 짓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 하나 있다. 선진화된 금융시스템 공학과 더불어 정보통신 인프라가 끊임없이 융합하는 금융테크놀로지를 갖춰야 한다. 홍콩은 현대화된 금융인프라와 금융결제시스템을 갖추기 이전에 가장 진보적이고 광활한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홍콩은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면서 동·서양이 아우르는 다양성으로 활기찬 매력이 넘치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화양연화 그 자체였다. 국제금융과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결합한 핀테크 무대에서의 의사소통은 영어가 필수이다. 글로벌 거점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실용적 영어는 국가간 금융경쟁력에서도 생존 가능한 경쟁수단이자 무기이다. 

6회를 넘긴 '홍콩 핀테크 위크'는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이다. '함께 확장하는 핀테크 미래' 테마로 개최된 핀테크워크는 미래 테크금융의 동력과 혁신적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정보기술(IT), 금융, 핀테크, 투자자, 규제기관들이 함께 모여 더 나은 핀테크 비전을 모색하는 확장형 마켓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홍콩 금융관리국은 '핀테크 2025'의 중점 분야를 공개했다. 전면적인 은행의 디지털화, 홍콩 CBDC(디지털화폐) 연구 강화, 차세대 데이터 인프라 구축, 핀테크 인력 확충 그리고 정책자금 지원을 통한 핀테크 생태계 육성이 핵심이다. 


인력 수급, 임금지원, 세제지원, 교육혜택 등 실효적 처방 시급

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인력 확충이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핀테크 정책과 육성방안이 쏟아져도 정작 전문인력의 양성과 인재유치는 단기적으로 이뤄낼 수 없는 과제이다. 거시적인 제도와 정책 발표보다는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 수급과 임금지원, 세제지원, 교육혜택 등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효적 처방이 시급하다.

국제결제은행 홍콩 센터는 이미 소액결제용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디지털 홍콩달러 실험은 중국 인민은행의 디지털 위안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중국과 홍콩의 본능적이고 호환적인 디지털 통화 발행과 지급결제 수단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

코로나 펜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홍콩 금융업계는 기술혁신을 채택한 핀테크 생태계를 촉진하고 있다. 앞당겨진 디지털금융 시대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차세대 핀테크 전략이 담당할 것이다.

홍콩투자청은 매년 스타트업 이벤트인 '스타트미업에이치케이(StartmeupHK)'를 개최한다. 홍콩이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고 창업에 필요한 환경을 신속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스타트업 특구로 싹 틔우고 있다.

핀테크 컨퍼런스인 '넥스트머니(Next Money)'에서는 세계 1000여개의 핀테크 스타트업이 참가하는 피칭 경연장이다. 최종 우승자는 상금과 함께 글로벌 스폰서 기업과 독점적인 계약 기회를 덤으로 가져간다. 과거 무역과 금융 중심의 편중된 산업의 구조 개선을 위해 스타트업 생태계와 핀테크 육성, 블록체인 투자 등으로 균형을 맞춰 나가고 있다. 미래의 홍콩 경제를 빛낼 IT 기술과 핀테크 영역에 규제철폐와 투자확대라는 함대를 빅토리아 항구의 새로운 전략자원으로 입항시키고 있다. 


디지털자산 생태계, 홍콩의 새로운 황금기 이끌어 나갈 전망

이제 홍콩은 중대기로에 서있다. 홍콩의 경제와 자본시장의 외형은 지속되고 있으나 중국의 엄격한 통제하에 국제금융 허브의 매력이 주춤하고 반정부 시위와 강화되는 규제 속에 고급인력과 해외자본은 인접국가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동안 쌓아올린 국제금융탑과 아시아 금융타워의 화려한 빛이 사라지는 위기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금융으로 다시 밝혀나가고 있다.

홍콩의 디지털금융 주류는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스타트업과 IT기업이다. 과거 지급결제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인슈어테크 중심으로 성장하던 핀테크 산업은 진화하는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 시장 확대로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그리고 메타버스가 자아내는 신대륙에 디지털자산 생태계가 홍콩의 새로운 황금기를 이끌어 나갈 전망이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홍콩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영국 통치가 끝난 이후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과 거친 행정력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면서 첵랍콕 국제공항은 해외 이주 행렬이 멈추지 않는다. 중국 본토에서의 급격한 인구 유입과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 그리고 높아져만 가는 인권침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주권이 반환되기 전 홍콩 영화에서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를 감지하고 있었다. 80년대 홍콩 누와르의 광팬이던 시절 다시 돌려 보던 감성영화와 90년대 홍콩반환에 대한 암울한 정서와 방황하는 청춘, 탈출구 없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은 빅토리아 항구를 휘감았다. 두 개의 에피소드 영화 '중경삼림'에서는 연인과의 이별보다 홍콩과의 결별이 더 큰 아픔과 혼란으로 마주한 홍콩의 청춘은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으로 허무함을 메워나갔다.

"홍콩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지길 기도하겠습니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의 떨리는 음성은 빅토리아항의 찬란한 역사와 작별을 붙잡고 있었다. 홍콩의 불안해진 정세와 약해지는 금융경쟁력, 발길 돌리는 자본을 바라보는 경쟁 도시들은 꿀처럼 달콤한 '첨밀밀'을 운명처럼 마주하고 있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한창의 디지털전문위원으로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메타버스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빅데이터·정보보학과에서 핀테크보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를 맡고 있다. 부산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 사업평가위원과 블록체인포럼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