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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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다돼가는 e스포츠 역사에서 반전이 일어나기도 했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 바로 결승전이었습니다. 

그리고 e스포츠에서는 하나의 속설이 있습니다. 우승팀은 하늘에서 낸다는 말이죠. 우승이라는 것은 실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실력이 좋다고 해서 달성할 수 없는 것, 너무나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바로 우승이라는 결과입니다.


모두의 예상은 한화생명의 우승이었다

신한은행 헤이영 카트라이더 리그 2021 시즌1 결승전이 열리기 전 대부분은 한화생명e스포츠(한화생명)의 우승을 점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생명은 결승전에 올라오기까지 단 1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 운영을 보여줬습니다.

문호준이 은퇴했지만 한화생명의 팀워크는 오히려 전 시즌보다 더 좋았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문호준 혼자 '하드캐리'하는 모습이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전 선수가 고르게 활약하며 강팀으로 성장했죠.

한화생명e스포츠/사진=넥슨 제공
한화생명e스포츠/사진=넥슨 제공

게다가 배성빈은 에이스 결정전에서 박인수, 이재혁 등을 줄줄히 연파하고 승승장구 했으며 샌드박스와의 결승진출전에서는 유창현이 에이스 결정전에 출격해 박인수를 제압, 또다른 에이스 결정전 카드로 급부상 했습니다.

그에 비해 샌드박스는 박인수가 잇달아 에이스 결정전에서 패했고, 개인전 결승전에서도 유창현에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죠. 스피드전은 완벽했지만 아이템전에서는 아쉬운 경기력을 보인 것이 사실이었기에 샌드박스가 한화생명을 이기는 것은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결승전 당일, 분위기부더 달랐던 양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승전 당일, 한화생명은 여유가 넘쳤습니다. 결승 경험이 워낙 많은 최영훈을 비롯해 배성빈과 유창현, 박도현 모두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찬 눈빛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샌드박스 선수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김승태는 메이크업도 포기하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습니다. 박현수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생애 첫 결승에 오른 정승하도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샌드박스 선수들/사진=이소라 기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샌드박스 선수들/사진=이소라 기자

항상 여유넘치고 농담도 잘하는 박인수도 겉으로는 여전한 듯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흡을 가다듬기도 했죠. 누군가를 찾기 위해 우연히 본, 박인수가 호흡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이번 우승이 간절한지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상반된 두 팀의 분위기를 보며, 우승팀은 샌드박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숱한 결승전을 경험하면서, 우승이 더 간절한 팀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하는 상황을 자주 봤기 때문입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샌드박스의 스피드전

샌드박스는 이번 시즌 스피드전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네 선수 모두 개인전 결승에 진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샌드박스 선수들의 스피드전 실력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런데 이번 결승전에서는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죠. 정말 이기고 싶었나 봅니다. 정승하를 제외한 세선수는 잦은 실수를 보였고 결국 4대3이라는 아슬아슬한 스코어로 승리했습니다. 

팀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샌드박스/사진=이소라 기자
팀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샌드박스/사진=이소라 기자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면, 잘하던 것도 잘 안풀리곤 합니다. 샌드박스가 딱 그래보였습니다. 너무 우승하고 싶어서, 잘하던 스피드전에서 고전하는 모습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힘든 스피드전을 펼친 뒤 아이템전에서는 싱거우리만큼 압승을 거뒀습니다. 아마도, 모든 긴장을 스피드전에서 승리하고 난 뒤 떨쳐냈나 봅니다. 팀워크와 주행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경기 운영을 펼치며 그렇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뜨거운 눈물뒤의 숨겨진 노력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가장 맏형인 김승태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박인수가 울었죠. 선수들과 팀들 중 80%가 한화생명의 우승을 점쳤기에, 샌드박스의 우승은 선수들에게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김승태는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꾸만 실력이 떨어져갔고, 동생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아를 악물고 연습했지만,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좌절도 했던 지난 날들. 김승태는 1년 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습니다. 우승했을 때 한번도 울지 않았던 김승태가 그렇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판넬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 시작한 샌드박스 김승태/사진=이소라 기자
판넬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 시작한 샌드박스 김승태/사진=이소라 기자

박인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항상 최강자로 불리지만 유독 운이 따르지 않아 개인전 우승도 동생들에게 내어줬고, 팀전마저도 스스로 무너지면서 우승컵을 내줬죠. 아마도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던 선수가 박인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간절했던 우승컵을 안고 그들은 '펑펑' 울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승컵을 되찾아 왔는지 알기에, 그 눈물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기에,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죠.

샌드박스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팀도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연습도 누구보다 열심히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카트리그에 진심입니다.

다음에 두팀이 만나게 되면 누가 더 간절한 마음일까요? 벌써부터 다음 시즌 두팀의 맞대결이 기대됩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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