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캐리커쳐=디미닛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캐리커쳐=디미닛

삼성전자가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 건립 부지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로 결정지으며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향한 큰 발걸음을 뗐다.

지난 5월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전자는 6개월 간 부지 선정을 두고 고심해왔다. 결국 마침표를 찍은 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지난 14일 가석방 3개월 만에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현지 정관계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투자 계획을 결정지었다.

이 부회장은 열흘 간의 출장길에 파운드리 공장 부지 결정을 비롯해 5G와 백신 등 삼성의 미래 먹거리 확보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첨단 기술 공조를 약속받으며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이 부회장은 출장 중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고 강조하며 '초격차'를 넘어선 '뉴삼성'으로의 새로운 비전을 강조했다.


바이오·차세대 통신 등 '전략사업' 경쟁력 확보 나서

이 부회장은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가석방 당시 이 부회장에 대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있었던 만큼 가장 먼저 파트너인 모더나부터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 사진=삼성전자 제공
1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과 아페얀 의장은 코로나19 백신 사업의 공조 방안과 향후 추가 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모더나와 mRNA 백신 생산 계약을 체결하고 8월부터 생산에 나선 바 있다. 지난 10월부터는 삼성이 생산한 백신이 국내에 출하돼 전국의 방역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어 17일에는 미국 이동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Hans Vestberg)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만났다. 이 자리에선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라이즌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한스 베스트베리(Hans Vestberg) CEO / 사진=삼성전자 제공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라이즌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한스 베스트베리(Hans Vestberg) CEO / 사진=삼성전자 제공

지난해 삼성전자는 버라이즌과 약 7조9000억원 규모의 5G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두 회사는 향후 6G 등 차세대 통신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 등 바이오 사업와 5G, 비욘드 5G 등 차세대 통신 분야는 이 부회장이 지난 8월 출소 후 밝힌 240조원 투자 계획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당시 삼성은 바이오 산업을 반도체를 이를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달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5G 이후 차세대 통신시장의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 논의 '민간 외교관' 역할

이 부회장은 18일부터 이틀 간 워싱턴D.C에서 백악관 고위 관계자 및 미 의회 핵심 의원들과 잇따라 만나 미국 반도체 2공장 설립과 더불어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 방안과 연방정부 차원의 반도체 기업 대상 인센티브 등에 대해 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이 부회장과 백악관 인사들은 5G 네트워크, 바이오 등 미래 성장사업을 중심으로 한 양국 정부 및 민간의 전략적 협력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이 외국 기업의 대표를 개별적으로 초청해 핵심 참모들과의 면담 일정을 마련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라는 게 현지 반응이다.


빅테크 수장들과 차례로 만나 '미래먹거리' 탐색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다시 미국 서부로 넘어간 이 부회장은 글로벌 ICT 기업 경영진과 잇따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미래먹거리' 확보에 매진했다.

20일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만나 반도체, 모바일은 물론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협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한국을 찾은 나델라 CEO와 만나 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기술 분야의 양사 전략을 공유하며 공조 방안을 논의한 바 있으며, 양 사는 소프트웨어 등의 분야에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위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CEO. / 사진=삼성전자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위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CEO. / 사진=삼성전자

이어 이 부회장은 아마존을 방문해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유망산업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아마존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차세대 화질 기술인 'HDR10+' 진영에 참가하고 있으며, 삼성 스마트TV에 AI '알렉사'를 제공하는 등 기술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사 경영진은 이번 미팅을 통해 혁신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에는 구글 본사를 방문해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과 면담하고 상호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구글 경영진과 시스템반도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자율주행, 플랫폼 혁명 등 차세대 ICT·소프트웨어 혁신 분야의 공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 /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 / 사진=삼성전자 제공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확장에 '안드로이드 동맹'으로 불리는 구글이 '우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삼성은 '초격차' 넘어 '개척자'로 거듭난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을 통해 '뉴삼성'에 대한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그는 뉴삼성이란 구호가 단순히 기존에 하던 사업을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21일과 22일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DSA·Device Solutions Americ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차례로 방문해 인공지능(AI)과 6G 등 차세대 핵심 기술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DSA와 SRA는 각각 삼성전자 DS 부문과 세트(IM, CE) 부문의 선행 연구조직으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전진 기지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연구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 세상과 산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우리의 생존 환경이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혁신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이 부회장은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거듭 당부했다.

재계에선 이번 미국 출장을 통해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가동하는 동시에 뉴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면서 삼성전자의 변화와 도약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이 좀 더 적극적인 경영활동으로 팬데믹 이후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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