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공항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 짐도 있고 애도 있어 택시 호출 플랫폼에서 대형택시를 예약해놨습니다. 비용은 일반 택시에 비해 2배 정도 비쌌지만, 밤 늦은 시간이었고 내일 가족들이 출근과 등교를 해야 했기에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편안히 이동하고 싶어 고민 없이 대형 택시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급가속과 급제동에 트렁크에 실린 제 캐리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소리가 차내에 울려퍼졌습니다. 마치 레이싱 게임이라도 하듯 끼어들기를 하며 차선을 계속 옮겨다니는 탓에 손잡이를 쥔 손은 도착할 때까지 힘을 풀지 못했습니다. 황색불이 보이면 결승점이라도 본 듯 더 속도를 내는 바람에 오는 내내 마음을 조려야만 했습니다.
다시는 이 플랫폼의 택시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별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비용을 좀 더 내더라도 더 나은 이동을 하고 싶다는 제 바람을 만족시킬 서비스는 왜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왜 택시는 달라지지 않는가
직장인은 하루 평균 2시간을 이동에 소모한다고 합니다. 이 시간만 잘 보내도 하루를 훨씬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비싸더라도 택시를 타는 일이 많은데, 과연 '돈값'을 했는 지 후회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모빌리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택시 호출이나 결제 등의 여건은 많이 편리해졌지만, 운행 같은 본질적인 서비스 질에 대한 불신은 여전합니다.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카비(CARVI)에서 일반 운전자 165명과 택시 호출 플랫폼 소속 운전기사 102명의 운전 습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택시 운전자들이 일반 운전자에 비해 급정거와 급가속·감속을 12배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는 무단 차선 변경은 100㎞당 33.6회에 달해 일반 운전자 12.6회 보다 2.5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플랫폼 업체에서도 기사 교육과 평가 등을 통해 운행을 개선하고 있지만, 여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기사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기사들은 플랫폼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입니다. 플랫폼과 택시 업계 사이에 주도권을 두고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이라 어느 한 쪽이 키를 잡고 변화를 이끌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플랫폼 vs. 택시 갈등…승객은 안중에 없다
이쯤해서 '타다'라는 서비스가 떠오릅니다. 지난 2019년 혜성같이 나타난 타다는 넓고 쾌적한 공간, 친절한 서비스 등 기존 택시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각광을 받으며 1년 여 만에 1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불러모았습니다. 저나 주변 사람들도 굉장히 만족하던 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택시 이외의 차량이 유상여객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국회에서 타다와 같은 렌터카 기반의 차량 호출서비스를 불법으로 규정하도록 법을 바꾸면서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후 정부는 플랫폼 택시 서비스 유형을 재정비했고,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은 택시 앱 호출과 가맹택시 기반의 서비스가 주류를 이루게 됐습니다. 당시 타다는 이런 기존 택시 중심의 플랫폼으로는 타다 베이직 이용자들이 호응하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기존 관행에 굳어진 택시라는 틀 안에서는 서비스 혁신이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실제 제도 개편 이후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접은 타다는 가맹 택시 '타다 라이트', 준고급 택시 '타다 플러스' 등을 선보였으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타다가 퇴장한 이후 택시 호출 시장에 강자였던 카카오모빌리티는 제도 수혜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플랫폼 택시 업계의 독점적 사업자로 부상했습니다. 이후 모빌리티 업계의 관심은 온통 플랫폼 독과점 이슈에만 집중됐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서비스 유료화, 호출료 인상, 자사 택시 콜 몰아주기 등 택시 이슈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최근에는 500억원 규모의 상생안을 제시하며 업계 달래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타다 이후에도 모빌리티 산업은 바람 잘 날 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정작 택시와 플랫폼 간의 갈등 상황만 존재할 뿐 이 사이에 승객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입니다.
다시 서비스 경쟁으로 돌아가길
지금도 택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면 타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에 최근 타다는 대형 승합차 기반의 고급 택시 '타다 넥스트'를 선보이며 다시 재기에 나섰습니다. 타다는 다시 한 번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택시 시장에 변혁을 가져오겠다며 자신감에 찬 모습입니다. 실제 작년부터 진행한 베타 서비스에서는 고객 만족도 5점 만점에 평균 4.95점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타다 넥스트를 경험한 승객들의 재탑승률이 회차가 반복될수록 높아진다는 점도 자신감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타다의 재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 지 아직 속단하긴 어렵습니다. 독점적인 플랫폼 사업자가 있는 시장에 후발주자가 판을 뒤집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비스 차별화를 기회로 삼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입니다. 더 이상 플랫폼과 택시와의 갈등이 아닌 승객 중심의 서비스 혁신이 다시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아젠다가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기사 입장에서도 반길 일입니다. 지난 2년 여 간 코로나19로 이동 수요가 줄면서 택시 업계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최근 거리두기 조치가 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기사가 모자라 밤마다 '택시대란'이 펼쳐집니다. 많은 택시 기사들이 처우가 좋은 배달 쪽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열악한 처우와 비정상적인 수익구조는 기사들이 택시로 돌아오는 일을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배달 시장에서 기사들의 몸값이 올라간 건 배달앱 업체들이 단건배달 등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택시 기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길은 기존 틀의 유지도, 한 플랫폼의 독점도 아닌 경쟁 체제를 만드는 일입니다. 경쟁을 통해 기사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승객들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정부는 지금처럼 통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요금제와 면허제도 등에 유연성을 주고, 승객들의 안전이 유지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판'을 키워줘야 합니다. 더 이상 플랫폼과 태시 사이에서 소극적인 중재자 역할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산업을 육성해 택시 산업, 나아가 모빌리티 산업 전반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에선 더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탄생해 승객들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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