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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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금융감독 체계 전면 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현안 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과 감독 권한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산되면서 인허가·제재 등 주요 사안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와 여당은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개편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금융감독원은 건전성 감독을 전담하고, 판매 관행 등 영업행위 감독은 새로 신설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 맡는다. 개편안은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 이후 내년 1월 2일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기관이 다원화되면서 오히려 정책 집행의 일관성과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 전반에서 나온다. 특히 제재와 인허가 등 '시간이 돈'인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현재 금융당국은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주요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제재 수위를 논의 중이다. 그러나 조직개편이 현실화되면 담당 기관이 재정경제부와 새 금감위, 금감원, 금소원 등으로 분산되면서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당국이 이미 예정된 제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연될 경우 업계의 불확실성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 신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반발·파업 가능성, 금융 인가 심사 차질 우려

금감원의 조직 반발도 변수가 되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최근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 방안에 반발하며 집단 시위에 나섰다. 창립 이후 첫 총파업까지 검토 중이어서 실제 업무 공백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상자산 업계는 물론 증권사들이 추진 중인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인가 심사 일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발행어음·IMA 인가는 증권사들의 오랜 숙원 사업인데 금감원이 파업에 돌입하면 심사 업무가 멈출 수 있다"며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와 제재 수위 결정도 자연스럽게 늦춰질 수 있어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개편안에 따라 FIU가 재정경제부로 이관될 경우, 가상자산업계의 검사·제재 절차도 일정 기간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FIU 이관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검사와 제재가 지연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시장 전반의 규율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금융위는 지난 7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방지 규정 개정을 예고했고, 금감원은 올해 검사업무 운영계획에 가상자산사업자 점검을 포함했다. 하지만 조직개편 이후에는 감독 주체가 달라지면서 동일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나 중복 점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자산 업계, '예측 가능성 필요' 한 목소리...검사·제재 공백 최소화 해야

가상자산 업계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도의 강약보다 언제, 누가, 어떤 절차로 감독에 나설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불필요한 비용과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확보도 요구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조치의견서'와 '유권해석서'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사례, 영국이 반기마다 '규제 추진과제 통합일정표'를 공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감독체제도 예측 가능성 제고 장치를 서둘러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금융정책 전문가는 "강한 감독과 예측 가능한 감독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병행돼야 한다"며 "특히 가상자산처럼 규율 체계가 정착되지 않은 산업에서는 감독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해석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혜진 서강대 교수는 "이번 개편은 정책은 재경부가, 감독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맡는 구조로 이원화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책 영역까지 개입하며 불분명했던 부분을 분리해 보다 명확하게 역할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인가나 제재 등 금융사나 거래소들이 감독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할 절차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책은 재경부에서 중요 방향을 제시하고, 사업자 인가나 감독은 금융위와 금감원이 전담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의 금융감독 개편안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당장 현안 처리 지연이라는 부작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제재 수위 결정, 사업자 인가, 검사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질 경우 업계와 투자자 모두가 불확실성의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내년 1월 새 체제 출범까지 남은 몇 달, 정부가 얼마나 빠르게 예측 가능한 감독의 설계도를 내놓느냐가 시장 신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미희 기자 sophi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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