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1973년 8월 크레디트반켄에 무장한 은행강도는 인질을 붙잡고 경찰과 대치한다. 장기간 고립과 불안에 휩싸인 강도와 은행원들은 동질감이라는 사이코 매트릭스에 빠져든다. 인질로 잡힌 은행원들은 경찰을 설득하고 총격을 막아내고 자수를 유도한다. 자유를 만끽하기 보다는 체포된 무장 강도와 포옹하고 법정에서도 변호에 나선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은행과 현금, 인질 그리고 폐쇄된 공간의 극한상황이 빚어낸 고위험 트라우마다. 

그로부터 40년 후 더치페이가 일상화된 스톡홀름에서는 모바일 앱을 통한 소셜 결제가 자연스럽다. 스톡홀름 공항에는 환전소가 보이지 않는다. 하트진저쿠키를 사먹거나 택시를 탈때나 살루홀 야시장에서도 모바일페이와 키오스크로 결제가 이루어진다. 최근 신용카드 대신 스위시(Swish)와 같은 핀테크 결제만 받아주는 상점도 늘어나고 있다. 현금인출기가 사라진 도심, 현금을 보관하지 않는 뱅크는 은행강도라는 특수 전문직을 멸종시켰다.

스웨덴 중앙은행(릭스방크)은 '현금 없는 사회'를 보완하기 위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프로젝트 '이크로나(e-Krona)'에 착수한지 오래다. 디지털 월렛을 소재로 돈의 주인공을 조폐창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화폐가 아닌 가상화폐로 대체하는 증강현실로 무대를 옮기고 있다.
 
1661년 스톡홀름 은행은 세계 최초의 은행권 지폐를 발행했다. 이후 스웨덴 의회는 스톡홀름 은행 업무를 왕립재정은행으로 이관하고 국립은행법을 제정해 릭스방크 역할을 부여한다. 360년전 릭스방크가 발행한 종이화폐도 획기적이었다. 디지털화폐 실험을 위한 선도적인 프로젝트도 그들의 진보적인 DNA를 증명해주고 있다.


흔들리는 스웨덴 경제, 디지털화폐가 구원투수될까


2015년 정점을 찍고 하락중인 스웨덴 경제는 작년 GDP 성장률 1.2%에 그친데 이어 올해는 1.1% 최저치를 전망하고 있다. 2015년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를 최근 제로금리로 전환해 가계부채와 물가상승률을 조율하고 있다. 저금리 속에 추진하던 고용창출 정책은 국제 경기침체, 난민 유입과 장기 실업자 증가, 브렉시트 영향으로 경제성장률과 크로나화폐 가치를 깎아 내리고 있다. 더구나 저성장 지속과 주택가격 폭등은 실업률을 최고치로 끌어 올리고 있다.

릭스방크가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일상적인 금융서비스를 벗어나 투명한 세수확보,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 자금세탁방지 강화로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경제회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활약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에 가입돼 있으나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기에 다양한 등판 시뮬레이션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볼보, 에릭슨, 이케아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보유한 북유럽의 강국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9세기말 산업화 특수로 모여든 이민자들이 일궈낸 도시다. 중세의 체취가 묻어있는 올드타운 감라스탄의 비좁은 골목길 가게와 중세 고딕양식의 성당에서도 현금은 오가지 않는다. 카드결제로 이뤄지던 교회 헌금도 이제 모바일페이로 변화하고 있다. 성스러움과 경건한 마음이 전해지는 현금 대신 핀테크 기술로 감사의 디지털 기록을 남긴다. 

현금 사용이 줄어들면 탈세와 범죄자금 추적, 돈세탁을 억제하는 효과에 지하경제 양성화도 이끌 수 있다. 현금을 보관해야 하는 편의점과 노점상, 환전소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도 사라지고 있다. 스톡홀름을 포함한 대부분의 스웨덴 도시는 현금을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


핀테크 시대 '금융포용'도 잊지 말아야


그렇다고 '현금 없는 사회'를 반길 수만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핀테크 문화가 형성됐지만 금융소외계층은 디지털 거리두기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현금 사용에 대한 자유와 권리는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다. 저신용자와 노년층은 현금인출을 위해 ATM기기와 현금재고가 있는 은행점포를 찾으러 여행 가방을 싸야할지 모른다. 

디지털금융 시대를 맞이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건 금융포용이다. 사후약방문 포용정책보다 처방전이 디테일하게 준비된 기술이 필요하다. 분명 이득이 많고 편리한 테크노밸리를 육성하면서도 취약계층을 데스밸리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잘 융합된 스웨덴, 디지털 금융의 메카 스톡홀름의 가상현실 매트릭스는 삶의 질을 해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성인이 된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신 기술변화를 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김정혁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서울사이버대 빅데이터 정보보호학과에서 핀테크보안을 강의하고 블록체인 컨설팅업체인 온더블록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을 역임하고,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겸 자율규제위원, 한국블록체인평가 기술고문, 한패스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