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유럽 주변국들의 잦은 침략과 종교전쟁으로 조국을 온전히 갖지 못했던 발트해 연안국은 바다 깊은 곳, 깊이 보석을 숨겨두어 왔다. 북방전쟁으로 오랜 기간 러시아 지배를 받다 가까스로 벗어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또다시 독일의 강점과 소련연방의 통치를 받는다.

슬픔에도 강인했던 에스토니아인들은 독립을 부르짖다 목숨을 잃고 자유를 외치다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다. 그런 기나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도 나라를 오롯이 지켜낸 소수민족은 고전동화 같은 그들의 문화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중세도시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리가와 리투아니아의 빌뉘우스까지 펼쳐진 620Km의 인간사슬은 그들의 민족과 정체성을 온 몸으로 합창했다. 무력 침공으로 정부가 무너진 치욕스러운 날, 50주년을 맞이해 도시와 숲속에서 뛰쳐나온 노래혁명은 마침내 발트3국이 소비에트공화국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장엄한 오페라였다.

탈린이 수도인 에스토니아는 정체성과 언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보석 같은 노래를 늘 가슴속에 묻어 두고 다닌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탈린은 이제 노래혁명 이후 새로운 디지털혁명을 들려주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1인 창업가와 글로벌 스타트업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 

30년전 독립 당시 허약한 경제와 빈약한 산업기술,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금융시장이었지만 이제 탈린 시가지는 스타트업 창업과 디지털 행정으로 활력이 넘쳐난다. 병원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손에는 아빠의 손길보다 전자주민증(E-ID)을 먼저 쥐어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 소스코딩 프로그램은 디지털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블록체인에 저장되는 개인정보와 의료정보로 투명하고 안전한 데이터 소사이어티를 신뢰기반으로 쌓아가고 있다. 지방선거부터 도입한 블록체인 전자투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투명하게 표심을 읽어내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운영의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국경의 장벽을 허물었다. 약탈과 침략으로 얼룩진 발트연안에 쌓아올린 높은 성곽을 부수고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전자시민권(e-Residency)은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다. 전자시민권 카드 하나로 현지 채용이나 사무실 없이 온라인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은 은행계좌 개설과 법인세 감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하거나 해외 진출을 개척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는 유럽시장을 마주할 좋은 기회이다.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하는 영국에서 세계 최대의 핀테크기업인 트랜스퍼와이즈가 탄생한다. 비싼 은행 수수료 대신 매칭 소싱 방식의 외화 송금과 환전은 핀테크 혁신의 분수령이었다. 가당치 않은 서비스 모델을 P2P 기술로 일궈낸 두 청년의 당돌함은 보수적 금융판도를 뒤집는 돌직구였다. 두 청년 모두 평범한 에스토니아인이다. 외화송금이 가져다주는 불편함과 높은 수수료에 대한 불만은 직접 스타트업을 세워 해소했다. 간편함과 저렴한 알고리즘이지만 세계 금융시장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1991년 독립당시 홀로 설 힘조차 없던 가난한 삼림국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와 핀테크 육성으로 1인당 GDP 2만3000달러를 넘어섰다. 학생과 정치인까지 프로그래밍 기술과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자유민주적 공공서비스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경제 혁신과 정부 개혁을 가속화하는 에스토니아 정책의 끝은 디지털 삶으로 향해가고 있다. 정부의 노력과 확신이 미래를 좌우할 인공지능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작지만 강렬한 독립국가 에스토니아는 E-stonia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중세 시간여행자를 유혹했던 탈린 항구는 이제 전 세계 핀테크 선박들의 입출항으로 발트해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Focus on your passion, not paperwork"

나라 자체가 스타트업 국가다운 에스토니아 정부의 합창이다. 도시 자체가 창업 플랫폼인 탈린의 거리에는 매혹적인 핫 플레이스와 핀테크 하우스가 신비로운 노래를 조화롭게 자아내고 있다.

글=김정혁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호학과에서 핀테크보안과 블록체인을 강의하고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컨설팅업체인 온더블록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을 역임하고,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겸 자율규제위원, 부산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 분과위원, 하이브랩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