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박지성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자 동일한 스폰서를 받으며 리즈시절을 보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선명한 레드 저지에 새하얀 'vodafone' 로고는 맨유의 전성기와 함께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보다폰은 음성과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Voice data fone)한다는 비전으로 1982년에 설립된 영국의 통신회사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현재 40개국의 메이저 통신사와 협력하는 세계 최대의 다국적 통신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90년대 후반 영국 통신시장의 포화상태와 출혈경쟁으로 열악해진 경영의 돌파구를 해외시장 진출과 인수합병으로 극복해 나갔다. 유럽, 미국, 일본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에도 보다폰의 기지국 보급은 멈추지 않았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인도양 해안을 끼고 기름진 토양과 고지대 산맥이 뻗어있는 동아프리카의 케냐공화국에서 보다폰은 통신사업을 넘어 낙후된 금융까지 보듬기 시작했다. 독일의 보호령과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1963년 케냐는 독립을 선포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도 케냐의 루오족 출신이고 할아버지는 독립투사로 항거하다 투옥과 모진 고문을 받아냈다. 

케냐의 경이로운 자연에 버금가는 또 다른 매력은 워킹이다. 유목민인 마사이족의 건강한 걸음걸이와 각선미는 남다른 웰빙과 미용을 뽐낸다. 아스팔트와 달리 부드러운 초원에서 맨발로 무게중심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원활한 혈액순환을 돕는다. 빠른 회복력에다 다이어트는 덤이다.

케냐의 한적한 동네 아재도 마라톤은 3시간 내에 완주한다. 보스턴 국제마라톤 10연패와 매회 올림픽 신기록도 갈아치우는 민족이다. 세계 각국의 육상 유망주로 귀화하는 마시이족의 후예들은 사파리와 스피드라는 세렝게티 매트릭스를 확신시켜 주고 있다. 

마사이어로 시원한 물을 뜻하는 나이로비는 케냐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됐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으면서도 최대 상업도시다. 개발도상국 최초의 UN 산하기구의 본부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몇 안되는 금융허브이자 가장 활기찬 대도시인 나이로비에는 성당과 모스크가 상존하고 국립공원의 맹수들도 도심 한가운데서 움틀거리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자 세계 유일의 야생동물 보존지역으로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눈 덮인 케냐봉과 거대한 호수를 넘나드는 야생 생태계는 취약해진 농업을 대체하는 불멸의 관광자원이다. 나이로비를 통해 천혜의 대륙과 야생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현지 화폐인 실링으로 환전해야 한다.


물물교환하던 케냐 국민들을 위해 보다폰이 나섰다


대다수 케냐 국민들은 실링으로 물물교환과 상품구매를 한다.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현금을 손에 쥐고 해결하거나 운전기사에게 송금을 맡겨왔다. 빈번한 현금 분실과 도난, 노상강도에 탈탈 털린 국민들의 아픔을 보다 못한 보다폰과 사파리콤은 무거운 휴대폰에 가벼운 금융을 심기 시작했다. 

빈곤하고 금융에 무지한 천박한 사람들로만 취급했던 은행과 달리 피처폰에 모바일 머니를 발행하고 동네 상점을 은행 점포로 만들고 상점 주인이 ATM이 되고 통신으로 송금이 가능한 핀테크의 서막을 세상에 알렸다.

금융포용은 거창하고 원대한 과제가 아니다. 이처럼 현실금융에서 외면 받는 소외계층의 절실함을 기술과 아이디어로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진정한 포용금융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이 나오기 전 2007년 모바일뱅킹의 원조인 엠페사(M-Pesa)는 금융강국도 IT강국도 아닌 사파리왕국에서 시작되었다. 월급도 엠페사로 받고 결제도 송금도 과태료도 기부금도 모두 엠페사로 이뤄진다.

당시 국내 전자금융거래를 규제하기 위한 전자금융거래법이 시행되는 날 사파리콤의 엠페사는 간편 금융을 선보였다. 엠페사는 유선전화, 인터넷전화, 휴대폰 통신을 아우르는 종합통신사이다. 모바일머니 서비스를 개시하고 10년 후 2018년 케냐 통신시장의 69%를 점유했다. 은행으로부터 천대받던 그들을 거대한 금융소비자층이 충성고객으로 돌려 세웠다. 

인구 5300만명에 맞먹는 휴대폰 가입자 수는 대부분은 과거 은행계좌가 없던 가난한 국민들이었다. 외진 시골 강촌에도 엠페사 대리점을 통해 모바일 뱅킹 서비스의 제약성을 제거해 나갔다.

국내 모바일뱅킹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신청서류와 공인인증서, 액티브X, 보안카드, OTP, 백신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신분증과 휴대폰 SIM카드만으로 엠페사 이용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서민 친화형 뱅킹 서비스다. 


아프리카 넘어 유럽 핀테크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


엠페사는 이웃 탄자니아, 우간다, 이집트, 남아공 등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의 핀테크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케냐의 고질적 실업률을 해소해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부가가치를 키워냈다.

서비스 초기에 문자 메시지만으로 간편하게 이뤄지던 송금 위주의 엠페사는 상업은행과 연계되면서 저축, 대출, 이체까지 확대된다. 본인의 계좌에서 엠페사 계정으로 돈을 이동하는데 1실링의 수수료도 지불하지 않는다. 글로벌 Best Mobile Money Service를 수상하고 UN의 밀레니엄개발 민간기업 선정, 경제개발기여 우수상, 제품혁신 최우수상 등을 휩쓴 엠페사는 핀테크 명예의 전당에 도장을 찍기 충분하다. 

최근 케냐중앙은행(CBK)과 싱가포르 통화금융청(MAS)은 나이로비에서 '아프리카·아시아 핀테크 페스티벌'을 공동 주관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최초의 핀테크 협력 행사에 중앙은행, 금융회사,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대규모로 참가하고 사파리콤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업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싱가포르 핀테크 기업은 케냐의 보험, 은행과 공동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 연금서비스를 출시했다.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삶과 생명의 존엄성을 핀테크가 일으켜주고 있다.

또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용해 농장의 가축을 대상으로 한 담보대출 서비스와 휴대폰 통신데이터 기반의 신용평가 서비스 등 남다른 디지털 인프라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케냐 '사파리밸리'의 시작은 핀테크


최근 아프리카에는 날로 증가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수많은 액셀러레이터가 활동 중이다. 그중 나이로비는 가장 많은 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들이 몰리면서 사파리밸리를 꿈꾸고 있다. 케냐 정부와 금융당국의 규제와 간섭 없이 사파리콤의 뱅크 없는 뱅킹은 태양보다 눈부신 성과를 형형색색 꽃피우고 있다.

한때 하루 일상이 빈곤과 절망의 매트릭스였던 나이로비의 어두운 그림자는 테크핀의 작은 포용이 걷어내면서 빈부격차도 해소해 나가고 있다.

엠페사라는 아프리카 금융의 흑진주를 채취한 사파리콤의 대주주는 40%의 지분을 보유한 영국의 보다폰이다. 차범근, 박지성 레전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손흥민의 유니폼 스폰서는 다국적 생명보험사인 AIA그룹이다. '더 건강하게, 더 오랫동안, 더 나은 삶'을 표방하고 있는 그들의 포용력에 기대를 걸어 본다.

작열하는 붉은 태양 아래 시들었던 취약계층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주고 소박한 금융포용 날갯짓 하나로 나이로비를 떠나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을 힘차게 토닥거려주고 있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사이버금융 플랫폼과 시장감시 시스템, 정보보안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전자금융 표준화, 금융안전대책 수립, 핀테크 혁신 지원을 거쳐 블록체인 기반 빅테크 전략컨설팅을 맡고 있다. KIST, 대우증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은행, 한패스의 경험으로 해외 전자금융인프라 컨설팅과 부산블록체인특구 컨설팅을 담당했다. 현재 한국디지털혁신얼라이언스 사업추진단장,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겸 자율규제위원, 부산특구 자문위원으로 하이브랩 디지털화폐연구소장과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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