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숨 쉬기 힘들 정도로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 마주친 도심 속 공원의 그늘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떠나기 전에 체크한 30도를 훌쩍 넘은 온도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글 같은 습도가 발목을 잡는다. 나무숲 사이 그늘진 벤치에 잠시 누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휴식은 가뭄 끝 단비 같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2시간을 걸어 도착한 따오단 공원은 천년을 버텨온 고목들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전쟁유물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울긋불긋 수놓은 꽃길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청아한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무료 교향곡은 등줄기를 타고내리는 땀을 서서히 식혀준다.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전쟁의 참상을 뒤로 하고 무작정 들어간 골목길에는 숯불 연기를 뿜어내는 고기 향과 찜통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육수가 코끝을 자극한다.

쌀국수와 돼지고기 완자를 향긋한 채소와 곁들어 낸 분짜는 한국에서 맛본 기억과 전혀 다른 오감을 풍미하고 있었다. 새콤하고 차가운 느억맘 소스에 면과 고기, 야채를 적셔 호로록하면 찌는 더위를 잊게 하는 감칠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1인분 분짜 가격으로 3만동(VND)을 지불하면서 왜 모든 베트남 지폐에는 호치민의 얼굴이 모셔져 있는지 왜 동전은 찾아볼 수 없는 지 궁금했다.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막을 내린 월남전 이후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통치되고 있지만 도심과 시골길 어디에서도 공산주의 색채를 발견하기 힘들다. 독신으로 일생을 베트남 독립을 위해 살아온 호치민, 항일 독립전쟁과 반 프랑스 전쟁을 이끌고 독립연맹과 공산당을 창설한 최고군사지휘관 호치민은 꿈에 그리던 베트남 통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조국을 지켜낸 국민들의 정신적인 국부인 그의 이름을 따서 사이공은 호치민 시티로 개명된다.


은행계좌 비중 30%였던 베트남, 모바일금융으로 빠른 전환

수도 하노이 보다 경제적으로 부강해진 호치민은 베트남 최대 도시이자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경제중심지다.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과 거리에 넘쳐나는 젊은이들, 그리고 중심가와 외곽 곳곳에 공사 중인 빌딩과 아파트는 역동적인 베트남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당시 베트남 인구 중 은행계좌를 갖고 있는 비중은 30%대를 나타내고 있었다. 다른 동남아처럼 현금이 가장 보편화된 결제수단이고 직접 대면이나 가가호호 방문하여 지불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일반적인 상거래다. 아세안(ASEAN) 연합국가 중 가장 낮은 은행계좌 보유비율을 베트남이 차지하고 있었다. 현금이 유일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이용되고 디지털 결제방식은 찾기 힘들었던 호치민 시티였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1억에 육박하던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낙후된 기술,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며 전력부족으로 공장이 멈췄던 베트남은 자본주의 시장을 도입하면서 경제성적표가 확 달라진다.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를 버리고 해외 자본 유치와 교역을 통해 국제 시장경제에 합류한 베트남은 기업체와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고속성장 열차에 탑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더믹 상황에서도 역대급 경제성장과 실적을 쏟아내는 베트남은 이제 아세안 국가와 신흥 개발국의 성장률을 넘어선 대체불가능한 블루칩으로 올라서고 있다.

이러한 탁월한 국가성적표와 관광산업의 호황은 전자금융 불모지였던 베트남 금융산업에 핀테크 혁신 바람을 일으켰다. 과거 지역간 불균형과 극심한 소득격차는 오히려 모바일금융을 더욱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가 이동통신 인프라와 인터넷 사용자 규모 확산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로 인해 늘어난 인터넷 인구의 증가는 전자상거래 시장과 핀테크 비즈니스의 성장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도 나서서 '무현금거래' 정책 추진

핀테크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7년에 50여개에 불과한 핀테크 기업은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내놓아도 생소하고 익숙지 않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베트남 정부는 전체 지급결제의 현금거래 비중을 10% 이하로 낮추고 전자결제의 일상화를 목표로 무현금거래 정책을 추진한다. 모바일 페이를 기반으로 핀테크 시장의 성장과 현금 없는 경제를 기대하는 권력기관의 법적 기틀 마련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베트남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MOMO는 지급결제를 시작으로 폭넓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과 핀테크 산업의 출현 그리고 디지털 금융시장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전자결제 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 규모가 증가하자 지분제한 제도를 폐기했다. 과거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으로 이어지는 침략과 처절한 독립전쟁의 역사를 반복한 베트남은 빈곤한 경제와 불안정한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안전자산을 중요시하고 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보급된 스마트폰과 은행계좌는 전자지갑, 모바일뱅킹, 전자결제 앱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긍정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베트남 금융업계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금융회사들이 핀테크 기업들과 모바일 기반 지급결제 시스템을 연결하고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확대하고자 '디지털 체계 개선 작업'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베트남 핀테크기업에 투자한 국가들은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영국, 싱가포르, 프랑스 등으로 다양성과 전문성 그리고 혁신성을 갖추기에 충분한 4차 산업 기반기술을 융합해 나가고 있다.

호치민시는 경제중심지에 이어 금융IT 융합단지 개발지역으로 선정돼 글로벌 신흥 핀테크 허브로 부상하고 있으며 핀테크 비즈니스 확산의 최적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증가로 미래융합형 인재가 양성되고 첨단기업과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가 활성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디지털금융시대로 접어드는 베트남

미래의 디지털 베트남을 짊어질 풍부한 청년세대, 가파르게 성장해가는 이커머스 마켓플레이스 그리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핀테크 산업의 발전은 또 하나의 국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호치민 시민들은 이제 불편하고 답답한 금융을 버리고 간편하고 신뢰하는 디지털금융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와 금융당국도 호치민의 핀테크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규제개혁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문턱이 높았던  금융장벽을 함락한 호치민은 보다 나은 핀테크 생태계 조성과 디지털 혁명을 위해 샌드박스와 사이버보안 그리고 인재양성과 금융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호치민은 동남아 핀테크 허브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췄고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시장의 매트릭스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아세안 국가 중 싱가포르 다음으로 가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한 베트남, 현금 없는 경제를 갈망하는 베트남, 그리고 핀테크 요람을 꿈꾸는 호치민은 새로운 금융패러다임을 순조롭게 펼쳐 나갈 것이다. 사회주의 개방개혁의 상징적 모델인 중국과 베트남을 연구하는 북한도 머지않아 주변국에 손을 내미길 바란다.

호치민 공항으로 향하면서 아쉬움과 무더움을 누르기 위해 들이킨 사이공맥주는 상쾌함은 물론 몰트향 진한 청량감을 안겨 줬다. 코로나19가 사라진다면 호치민 골목식당의 분짜를 다시 만나 새로운 맛의 변화를 상상해본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글로벌 디지털금융 스타트업 한패스에서 디지털혁신실장을 맡고 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로 핀테크보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를 진행 중이며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한국디지털혁신얼라이언스, 한국블록체인협회, 블록체인포럼, 부산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사업분과 등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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