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플랫폼 규제 관련법(온플법)이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자 신중한 검토와 판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나왔다. 미국과 중국으로 나눠진 글로벌 플랫폼 기업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국 플랫폼을 적극 육성해야 하는데, '온플법'은 이러한 기조를 역행한다는 진단에서다.
한국디지털광고협회는 17일 한국광고문화회관에서 '디지털 산업 육성을 위한 온플법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선 차영란 17대한국광고홍보학회장, 김병희 24대 한국광고학회장, 신원수 한국디지털광고협회 부회장, 한광석 12대 한국옥외광고학회장 등 업계 인사와 김동후 중앙대학교 교수, 유승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엄남현 홍익대학교 교수 등 학계 인사들이 참석해 플랫폼 주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美-中 기술 패권 전쟁 격화...학계 "플랫폼 주권 지켜야"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원수 한국 디지털광고협회 부회장은 "지금은 플랫폼 시대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시대"라며 "과거처럼 한 나라에서 진행되던 변화가 아니라, 지금은 지구 단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플랫폼으로 1등하게 되면, 지구에서 1등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전 세계에서 1등으로 자리잡게 되는 구조"라고 언급했다.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돼 있는 글로벌 패권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그는 분석했다. 핵심은 '데이터 주권'으로 봤다. 플랫폼은 이미 데이터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플랫폼 패권을 지닌 국가에 전세계적 데이터가 종속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자국 주권을 지키기 위해 플랫폼 주권을 절대 넘겨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 부회장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정성'이 아닌 '해외 거대 플랫폼'이 들어설 뿐"이라며 "단례로, 우리나라 플랫폼이 없어지면 그 자리는 '우버'나 '디디추싱' 등 글로벌 플랫폼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택시기사분들은 종국엔 외국 플랫폼 업체에 종속될 것이다. 자국 정부가 해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업에는 국경이 없는데 법은 국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플랫폼은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활동을 하는데 로컬 법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이어 "반면, 국내 기업은 법의 규제를 정면으로 받게 된다. 글로벌 기업은 규제할 수도 없는데, 자국 기업 역차별 가능성만 높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플법'은 중복규제·역차별 우려...학계 "신중히 논의해야"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현재 입법 추진 중인 '온플법'이 중복 규제와 역차별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광석 한국옥외광고학회장은 "(온플법 제정과정에서) EU 사례 이야기가 나오는데, EU는 자국 플랫폼이 없어 '규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미국 빅테크 플랫폼으로부터 주권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가야한다. 패권 전쟁에서 소비자 보호는 어떻게 해야할지, 국내 플랫폼은 또 어떻게 지원할 지를 중심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승철 이화여대 교수는 "로컬 플랫폼과 글로벌 플랫폼 간 역차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법안 제정보다 (국내 플랫폼) 자기규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차영란 한국광고홍보학회장은 "비대칭 규제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내 플랫폼은 손발을 묶어두고, 외국 플랫폼은 손발을 풀어둔 상황에서 권투 시합을 시키는 것"이라며 "빅테크 기업이 국내에서 세금이나 망 사용료를 두고 갈등하는 것도 해결 못한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에 규제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온플법' 제정이 사회적인 숙의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도 짚었다. 엄남현 홍익대 교수는 "EU 사례를 들며 '온플법'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데, 그 과정은 외면하고 있다"면서 "2020년 7월 실행된 EU의 법안은 2015년 부터 논의 절차가 실행됐다. 2018년에는 250페이지의 달하는 보고서도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전문가 조사, 기업 인터뷰, 참고명부 등을 포함하는 등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정적인 법안을 통한 규제가 아닌, 동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후 중앙대 교수는 "시장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법적 규제부터 들어가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신원수 부회장은 "국내 플랫폼 사업자, 입점 업체 등 관련 파트너사, 정부가 모여서 상생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고 전했다. 유승철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은 '다면적'이지만 규제는 '단면적'"이라며 "범부처적인 시뮬레이션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아 기자 twenty_ah@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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