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 중세와 미래가 융합하는 도시 
프랑스 정부, 핀테크 산업 발전 위해 과감하게 규제 풀어

김정혁 님 / 캐리커처=디미닛
김정혁 님 / 캐리커처=디미닛

이 안에 너 있다
"네 마음 속에 누가 있는 진 모르지만 내 마음 속에 너 있어"

비현실적 감성을 자극하는 오글거리는 멘트지만 수만 개의 전구가 반짝이는 에펠탑에서라면 큐피드 화살처럼 심장에 확 꽂힌다. 19세기 별처럼 수많은 화가들의 혼이 깃든 테르트르 광장은 고흐의 '몽마르뜨의 선술집' 작품처럼 그들의 서로 다른 애환과 흔적을 지금도 노을진 언덕위에 잔잔하게 물들이고 있다.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는 샹제리제 거리와 해질녘 발광하는 에펠탑은 영화제작소의 사랑과 낭만의 랜드마크이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로맨틱 순정 멜로 '파리의 연인'은 누구나 한번 꿈꾸어본 사랑을 갓 구운 바게트처럼 담아냈다.

파리 국립중앙공예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1855년 졸업한 22살의 청년 에펠은 철의 매력에 이끌려 철도회사에 취직한다. 청년은 수학적이고 창의적인 철교 설계와 탁월한 건축기술을 인정받아 어려운 공사들을 훌륭하게 마무리한다. 에펠이 퇴사해 설립한 건축 스타트업은 난이도 높은 유럽의 교량건설과 건축물을 잇달아 완공시켜 건설업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올라선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에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공모한 프랑스 정부는 에펠이 출품한 '철의 교각'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격렬한 반대와 소송을 제기하면서까지 에펠탑을 멸시하고 공사를 반대했다. 추악한 철덩어리, 천박한 구조물, 예술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감과 20년 후 철거 계약이라는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세상에 없던 철탑을 튼튼하게 쌓아 올렸다. 

온갖 저항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에펠은 오직 세계 최고 높이의 철조물을 세우기 위해 바람과 지반의 저항에만 집중했다. 이것이 안전과 미학을 지탱해준다는 그의 신념이었다. 어떤 압력과 상처도 '철의 미학'을 깨우친 엔지니어의 꿈과 도전을 꺾지 못했다. 이제 에펠탑을 흉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난한 화가들의 쉼터, 몽마르뜨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예술적 향취가 빛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꿈꾸는 프로포즈 장소이기도 하다. 화학을 전공한 철도 엔지니어가 설계한 '철의 교각' 에펠탑을 비극적인 가로등, 쓸모없는 철기둥이라고 폄하하며, 중단과 철거 탄원서를 제출했던 당시의 보수 계층은 에펠탑이 천문학적 미래가치를 가져 올 줄은, 프랑스를 세계 최대의 관광대국으로 이끈 혁신적인 예술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거대하고 위험한 철탑 공사에 한건의 인명사고 없이 완공된 것은 에펠만이 가질 수 있는 안전성과 통찰력의 매트릭스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핀테크와 플랫폼 경제의 혁신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파리 금융시장

뿌리 깊은 카톨릭 역사에 전통과 법질서를 중요시하는 프랑스는 보수체제의 향수가 진하다. 프랑스 금융도 마찬가지다. 상점에서는 여전히 현금과 수표책이 교환되고, 은행도 사전에 전담 창구 직원과 예약을 해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아날로그 금융이 줄어들지 않는 프랑스는 핀테크 활용 또한 저조하다. 시장조사기관이 발표한 글로벌 핀테크 이용 지수와 금융소비자 이용률에서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낮게 조사됐다.

하지만 2017년 7월 파리에서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에프(Station F)'가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위한 캠퍼스를 건립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촉진하고 새로운 경제 도약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프랑스 정부가 제정한 '기업성장변화법'도 파리를 핀테크 허브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유럽 각국에서 휘몰아치는 핀테크 비즈니스와 플랫폼 경제의 혁신 물결로 파리의 금융시장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기존 금융서비스의 답답함과 과대한 수수료 지불을 거부하고 빠르고 간편한 핀테크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파리에 새로운 본부를 열었다. 글로벌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모든 트레이딩 센터의 허브로 파리를 선택했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파리를 전략적 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JP모건체이스 자본과 인력을 투자한 것은 파리에 대한 최고의 사랑"이라고 답했다.

파리에서 탄생한 핀테크 스타트업 리디아(Lydia)는 스마트폰에 은행계좌와 신용카드를 결합해 모바일결제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간편결제와 간편송금으로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은 리디아는 보수적 금융 관행에 핀테크 혁신 열풍을 불어 넣었다. 

프랑스 정부도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해외 기술인력 모집과 출입국 허가 규제도 과감히 풀었다. 스타트업 직원들의 국적은 물론 나이, 학력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스타트업 창업자와 근로자, 투자자는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프렌치 테크 비자'를 1주일 내에 받아 볼 수 있다. 유로존을 탈퇴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는 프랑스 정부가 핀테크 경쟁에서 영국을 따라 잡을 기회라고 작심한 건 분명하다.


프랑스, 2년 연속 사상 최고치 스타트업 투자 기록

작년에 이어 올해도 프랑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처는 40개의 유망 스타트업 기업인 넥스트40(Next40)과 미래가 촉망되는 120개의 스타트업인 에프티120(FT120)을 발표하고 있다. 리스트에 선정된 스타트업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다양한 해택과 홍보 효과는 물론 글로벌 벤처 캐피탈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스타트업 독토리브(Doctolib)는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온라인 예약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과거 전화로 번거롭고 불편했던 병원예약 서비스를 빠르고 저렴한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전환해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독토리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프랑스 정부의 백신접종 사업을 맡아 존재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개인 의료정보와 원격의료라는 민감한 이슈에도 불구하고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테크 기반 의료플랫폼은 또 하나의 공공 인프라가 됐다. 

2021년에 선정된 파리의 유망 스타트업 중 가장 많은 분야는 바이오테크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헬스케어 시장과 디지털의료 산업의 성장성과 잠재력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파리는 예술과 패션의 본고장이자 세계 트렌드의 시작과 끝이다. 여행과 일상이 공존하는 낭만의 도시, 파리는 또 다른 혁신타워를 세우고 있다.

에펠이 인간의 꿈을 형상화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아름다운 설계를 고민하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의 상상력과 혁신적인 기술 그리고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에펠탑 없는 프랑스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다음 올림픽 개최지는 파리다. 100년 만에 올림픽을 다시 개최하는 파리는 에펠탑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융합 매트릭스를 통한 친환경 지구촌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 중세와 미래가 융합하는 도시 파리는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과의 동행을 기다리고 있다. 

지치고 바쁘기만 한 우리의 삶에서 간혹 하루가 길게 느껴질 때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파리의 연인' 속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는 "사랑해도 될까요" 멜로디가 오늘 하루를 아름다운 날, 사랑하기 좋은 날로 물들인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한창의 디지털전문위원과 서울사이버대 빅데이터정보보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대우증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은행, 한패스에서 시스템공학, 사이버금융, 정보보안, 핀테크, 블록체인, 암호화폐, 디지털자산 업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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