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전성시대, 투자 발표만 하면 기본이 수천억

#K콘텐츠에 열광하는 푸른 눈이 K제품 '단골 손님'된다

#제작환경 개선-인디제품 투자도 함게 이뤄져야


그야말로 콘텐츠 전성시대입니다. 혹자는 '드라마에 미친 나라'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이용자들이 '볼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거액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규모도 일이백억원 단위의 투자가 아닙니다. 넷플릭스가 먼저 5500억원 투자를 발표한 이후 KT가 4000억원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이걸 지켜보던 SK텔레콤의 웨이브는 '묻고 더블로 가'를 외쳤습니다. 무려 1조원 투자를 천명했죠.

/사진=웨이브 제공
/사진=웨이브 제공

"묻고 더블로 가"...발표만 했다하면 수천억

이 외에도 쿠팡은 쿠팡플레이를 위해 1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하죠. CJ ENM의 티빙도 4000억원 투자 발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3000억원 투자, 네이버의 1500억원 규모의 지분교환(CJ ENM, 스튜디오드래곤) 등 얘기만 나왔다 하면 가볍게 수천억대의 투자가 이뤄집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리 콘텐츠에 목을 메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4000억원 투자를 발표한 KT 강국현 사장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 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TV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는데,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서 한번 증가한 콘텐츠 소비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습니다. 국내 대표 영화관인 CGV를 운영하는 CJ CGV의 지난해 매출은 5830억원에 그쳤습니다. 2019년 매출이 2조원에 육박했는데 70%나 쪼그라든 것입니다. CGV도 이런데, 다른 영화관들은 더 하겠죠. 사라진 1조4000억원 가량의 매출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대부분이 동영상 플랫폼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에서 개봉을 택한 승리호의 홍보영상이 국내 대형 영화관 건물 스크린을 장악했던 모습이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요?


플랫폼보다 콘텐츠가 더 중요해진 시대

이제 모든 IT 플랫폼 사업자들은 '넷플릭스 전략'에 뛰어들었습니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인 '하우스오브카드'를 대흥행시키며 유력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로 부상한 것을 벤치마킹한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가입했는데 하우스오브카드가 있으니 보는 것과, 하우스오브카드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플랫폼보다 콘텐츠가 더 우위에 있는 시대입니다. 콘텐츠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플랫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살아남기 위해 좋은 콘테츠를 모셔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서울 강남역 메가박스 광고판에서 사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승리호' 소개 영상 /사진=허준 기자
서울 강남역 메가박스 광고판에서 사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승리호' 소개 영상 /사진=허준 기자

이렇게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입니다. 지난해 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 그리고 미나리까지...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가진 잠재력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도 '킹덤'이나 '스위트홈' 등 글로벌 인기 콘텐츠가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 콧대높은 디즈니도 한국에서 한국 이용자들을 위한 현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달라진 K콘텐츠 위상이 느껴집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국내는 물론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 분명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콘텐츠 덕분에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 견줄 수 있는 글로벌 영상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금상첨화겠죠.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K콘텐츠 흥행은 다른 K제품 수출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전세계에 알려지는 K콘텐츠가 많아지면, 저는 그 다음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K제품의 수출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K콘텐츠가 한국을 먹여살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호주에서 열린 CJ ENM의 K콘텐츠 축제 'KCON'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출장을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저도 잘 모르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와 안무를 따라하는 히잡 쓴 팬들과 푸른눈의 팬들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콘서트장 주변에 마련된 K푸드, K뷰티 부스에서 제품들을 체험하고 구매하는 모습에 두번째 충격을 받았습니다. K팝으로 한국을 알게된 사람들이 어떻게 K제품을 소비하는지 눈으로 확인한 것이죠. 저는 K콘텐츠의 미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7년, 호주에서 열린 K콘텐츠 축제 'KCON'을 찾은 호주 현지 팬들 모습 /사진=CJ ENM 제공
지난 2017년, 호주에서 열린 K콘텐츠 축제 'KCON'을 찾은 호주 현지 팬들 모습 /사진=CJ ENM 제공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즐기는 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 수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게 진짜 K콘텐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 콘텐츠에 해외 제품이나 문화가 등장하는 것이 더 아쉽습니다.   


제작환경 개선과 인디작품에도 관심 가져주길

이제 우리는 K콘텐츠가 진짜 힘을 발휘하기 위한 환경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제작환경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느냐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족한 제작비에 시달리다보니 과도한 간접홍보가 이뤄지는 것 아닐까요? 좋은 콘텐츠를 원한다면, 더 많이 투자하고 제작자들의 처우도 신경써야 합니다.

넷플릭스는 제작사와 9대1의 수익배분을 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과도하게 많이 가져가는 수익배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수익배분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 계약하고 싶다는 제작사가 줄을 선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투자한 이후 절대 제작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콘텐츠 제작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디 제작사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스럽게 수백억원을 투입한 대작에만 관심이 쏠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작이 나오기 위한 기반은 수많은 인디 제작사들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디 수천억원을 투자하는 기업들이 '돈이 될만한' 대작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 제작사들의 창의적인, 실험적인 시도에도 투자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준 기자 joo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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