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서핑이 인생을 바꿀거에요."

서핑 보드숍의 어린이가 낯선 청년에게 무심코 건넨 말이 그를 넘실거리는 파도에 올라 태우고 인생마저 바꿔 놓는다. 전직 대통령 닉슨, 카터, 레이건, 존슨의 탈을 쓰고 은행을 터는 아나키스트 4인조 강도는 현실과 가면의 삶이 다른 젊은이들의 초상화이다. 

FBI 신참이 은행 강도단을 추적하다 그들의 은신처인 서핑 포인트에 잠입하면서 서핑의 매력에 빠진다. 1991년에 개봉한 영화 '폭풍 속으로'는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내는 출구 없는 터널 '배럴'의 짜릿함과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어린 시절 세계 각지를 전전한다. 불우한 가정사와 혹독한 성장통을 오롯이 견뎌낸 곳은 토론토이다. 토론토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며 혼신의 힘을 다한 풋풋한 인생영화 한편으로 폭풍 성장한다. 


비탈릭을 성장시킨 도시이자 류현진의 도시 '토론토'

러시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온 미취학아동은 수학과 게임,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두각을 나타내지만 친구관계는 멀어진다. 토론토 고등학교 시절 학업 대신 게임에 빠지면서 실감한 탈중앙화에 대한 관심은 비트코인으로 연결된다. 대학을 중퇴한 배경도 비트코인의 기능과 화폐 속성을 개선하고 탈중앙화 파일저장소와 분산 애플리케이션의 작동을 위해서이다.

거창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드디어 토론토에서 야심차게 실행된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인 이더리움의 백서 '차세대 스마트계약과 탈중앙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공개하고 크라우드 세일을 통해 이더리움 재단을 설립한다. 티셔츠 외계인 이미지와 천재성을 지닌 청년 비탈릭 부테린은 세상에 없던 분산 컴퓨팅 플랫폼을 주도하고 비트코인이 이루지 못한 비즈니스를 생산하면서 최연소 억만장자로 폭풍 성장한다.

현직 캐나다 총리의 아버지인 전직 피에르 튀르도 총리는 80년대초 메이저리그의 유일한 캐나다 구단인 토론토의 한국 투수 영입에 공을 들였다.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되어버린 무쇠팔 최동원과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허가를 받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십년이 지난 후 오승환 투수가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한국 선수와 인연을 맺은 토론토는 FA시장의 대어인 류현진과 구단 역대 최고액으로 계약 하였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LA 다저스를 떠나 토론토에서 팀의 선봉장으로 우뚝 성장한다. 

토론토는 미국과 캐나다를 합쳐 인구 증가율이 가장 빠른 도시이자 북미 경제 중심지답게 스포츠 사랑 또한 남다르다. 늦깎이 창단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그 소속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NBA 소속의 토론토 랩터스에 대한 자부심은 절정의 단풍만큼이나 강렬하다. 국민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를 대표하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와 비인기 종목인 축구클럽 토론토FC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토론토인의 애정은 버터 타르트처럼 달콤하다.


이민자의 도시에서 창업의 도시로

이민자의 도시로 불리는 토론토는 다양한 민족들이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중동, 아시아 소수민족의 독창적인 거주문화와 유대인, 이슬람인, 인도인 다양한 민족들의 미나리 같은 삶이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과 달리 토론토는 다문화 포용성을 도시 발전의 토대로 삼아 이민자의 성공적인 정착과 지역사회의 통합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토론토에서 사용되는 언어만도 100여개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 이어 북미의 3대 테크시티인 토론토에는 수많은 금융기관과 핀테크 종사자들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집중되어 있다.

치솟는 물가와 고임금으로 허덕이고 신규 채용까지 어려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토론토에 새로운 둥지를 트면서 스타트업들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캐나다 정부의 개방적인 기업유치 프로그램과 파격적인 지원정책은 전 세계의 창업가와 모험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창업 아이디어만으로 연방 이민성의 인큐베이터와 벤처캐피털 지원 혜택이 가능하고 스타업 비자 취득도 용이하다. 취업비자는 물론 부양가족까지 영주권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은 메이플 시럽만큼이나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하다.

토론토에는 유독 IT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의 인공지능 연구소 설립과 기술투자 비중이 높다. 페이스북, 우버, 구글, 애플, 삼성전자, GM 등 글로벌 기업들도 자율주행, 음성영상, 로봇틱스, 딥러닝, 로보어드바이저, 모빌리티 관련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 중이다.


캐나다 금융도 '규제 완화'로 활기

과거 세계 핀테크 도입률 평균보다 낮고 보수적 색채가 강했던 캐나다 금융은 최근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 조치로 활기를 띠고 있다. 토론토의 핀테크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들이 거대한 얼음장벽과 같은 금융빙하를 녹이고 있다.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간편하고 편리한 테크금융이 봄날 눈 녹듯 차가운 얼음왕국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회사도 IT기업과 힘을 합쳐 핀테크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핀테크 기업과 협업해 새로운 금융서비스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제 북미를 대표하는 핀테크 전진기지로 우뚝 솟은 토론토는 모바일 기반의 간편결제를 중심으로 송금, 대출 서비스로 기존의 전통 금융시장의 틈새를 벌려가고 있다. 테크 기업들의 핀테크 서비스 개발과 금융시장 진입은 토론토와 캐나다 전체의 금융생태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소규모로 시작한 캐나다의 핀테크 서비스는 이제 빅데이터 기반의 개인용 자산관리와 투자 포트폴리오 제공으로 체급을 올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그리고 블록체인을 활용한 첨단 융복합 금융산업을 펼쳐가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캐나다의 ICT산업에 힘입은 핀테크 시장은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까지 적극 활용함에 따라 디지털 금융산업이 폭풍 성장하고 있다.

지난 2월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상장지수펀드)를 상장시켰다. 그동안 급격한 가격변동과 복잡한 입출금,  불안한 개인키 관리와 보안 문제로 주저하던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묻지마 투기가 아닌 자산투자의 새로운 공간을 내주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자산의 성장성을 수용하고 가상자산 금융상품에 대한 긍정적 해석은 캐나다 금융당국이 누구보다 가장 앞서가고 있다.

비트코인 파생상품은 오래전부터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취급됐지만 규제당국에 승인을 받고 제도권에 등장한 시기는 2017년 시카고 상업거래소와 시카고옵션거래소이다. 이후에도 제도권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ETF 상장 승인을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였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비트코인 ETF에 이어 Purpose Ether ETF, Evolve ETFs, CI Galaxy Ethereum ETF 3종을 동시에 상장시켰다.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하지 않던 캐나다 금융과 토론토 자본시장은 큰 파도의 물결에 올라타 짜릿한 폭풍 성장을 서핑하고 있다.


캐나다, 가상자산 금융을 품다

얼마 전 캐나다 중앙은행은 잘 작동하고 있는 현금시스템을 디지털화폐(CBDC)로 대체할 필요성이 없다고 공언했다. 가상자산을 캐나다 통화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겼던 캐나다는 최근 유럽중앙은행과 주요국을 중심으로 디지털화폐에 대한 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민간의 가상자산이 소비자경제와 금융서비스에 침투속도가 빠르고 장기 대유행에 진입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금융당국도 발 빠른 대응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에 설립된 가상자산 은행 갤럭시디지털은 암호펀드 운영과 블록체인 기술투자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갤럭시디지털이 디지털자산의 제도권 진입을 서두르기 위해 기업공개한 곳도 토론토 벤처거래소이다. 개인과 기관투자자에게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던 암호자산 브로커 보이저디지털도 토론토 벤처거래소에 상장돼 글로발 결제시장에도 진출하였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온라인 투자관리사인 웰스심플은 2020년 캐나다 정부로부터 규제적격심사를 통과한 최초의 거래소이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누구나 모바일 앱에서 캐나다 달러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사고 팔수 있다. 

디지털금융과 가상자산의 가속화로 현금과 은행강도가 사라지고 금융회사의 전유물이던 금융서비스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첨단기술에 금융을 접목한 테크기업과 자기주도형 금융학습자들이 이끌어 가는 탈중앙 디지털자산 매트릭스 시대라는 세찬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게임과 프로그래밍에 능한 새파란 청년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담아 세상에 공개할 때 그 누구도 크립토은행과 크립토거래소, 디파이, NFT가 전통금융을 대체할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부킹의 광장 토론토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대한  수력발전이 뿜어내는 창업과 육성이라는 북극 오로라가 형형색색 발광하고 있다.

등산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듯, 서핑도 파도를 올라타기 보다는 흐름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토론토가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하나가 되어 척박한 모험의 땅을 풍요의 땅으로 설레고 있다.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수 굉음에 흠뻑 젖은 채 넋 놓고 바라보던 나이아가라의 무지개를 다시 볼 날이 있을지 기대된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ESG 친환경기업인 한창의 디지털전문위원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대우증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은행, 한패스에서 시스템공학과 사이버트레이딩, 핀테크, 블록체인, 금융보안을 담당하고 현재는 한창의 미래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기반 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