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깎은 방망이다. 전에 쓰던 것과 뭐가 다른가 싶지만, 막상 써보면 쓰기에 꼭 알맞게, 섬세하게 잘 깎아 놓은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지금 가장 좋은 스마트폰이 쓰고 싶다면, 고민 없이 '아이폰14' 시리즈를 사면 된다.
이번 신제품 중 대화면 모델인 '아이폰14 프로 맥스'와 '아이폰14 플러스'를 대여해 일주일 간 사용해봤다.
아이폰의 적은 아이폰뿐
기본적인 성능면에서는 아직도 '아적아'(아이폰의 적은 아이폰)다. 애플은 자사 'A' 시리즈 칩셋이 경쟁사의 가장 최신 칩보다 성능이 최소 40%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사용환경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벤치마크 점수만 보면 거짓말은 아니다. 기본적인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 뿐만 아니라 배터리 수명을 좌우하는 전력 대비 성능(전성비)까지, 아직까진 경쟁 제품을 압도한다.
워낙 자신감이 있다보니 작년 모델에 썼던 'A15 바이오닉' 칩을 올해 최신 모델에 '재활용'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덕분에 작년 칩셋을 다시 쓴 일반형 '아이폰14'와 '아이폰14 플러스'는 시리즈 내에서 역대 가장 저조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나 기분 탓일 뿐, 굳이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지 않아도 성능면에서 크게 밀리는 건 아니다.
실제 '아이폰14 프로'와 '아이폰14 프로 맥스'에 탑재된 새로운 두뇌 'A16 바이오닉'은 전작과 비교해 4나노 공정을 도입하며 성능이 올라가긴 했으나, 실사용에서 크게 체감될 수준은 아니다. 대신 새로 생긴 '다이내믹 아일랜드'와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AOD)' 등을 전담으로 처리하는 독립적인 디스플레이 엔진이 달렸고, 카메라 영상과 사진 처리에 좀 더 최적화됐다는 점, GPU 메모리 대역폭이 늘어났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다.
애매한 '다이내믹 아일랜드', 유용한 'AOD'
아이폰14 시리즈의 정체성을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프로 모델에만 적용된 '다이내믹 아일랜드'와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AOD)' 일 것이다. 충돌감지 기능이나 위성통신 같은 기능도 새로 추가됐지만, 그런 기능을 쓸만큼 큰 사고가 안 나길 바랄 뿐이다. 위성통신은 한국에선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
제품 공개 때부터 화제가 된 다이내믹 아이랜드는 일단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하다. 노치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홀 디스플레이를 도입하되, 경쟁사 제품과 똑같이 보이지는 않겠다는 애플의 집념이 느껴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유기적으로 연동한 재치도, 집착에 가까운 애니메이션 디테일도 흥미롭다.
허나 화려한 포장에 비해선 아직 크게 쓸모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통화, 음악, 지도, 알람 등 몇몇 기본앱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직 지원하는 앱이 많지 않아 체감도가 높진 않다. 다행히 연내 '실시간 현황' 기능이 업데이트 된다. 예를 들어 우버를 부르면 실시간으로 도착까지 몇 분이나 남았는지 계속 표시된다. 얼마나 활용할지는 서드파티 앱 개발사들의 의지에 달렸다.
은근 단점도 눈에 보인다. 노치보다 카메라가 아래로 더 내려왔기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면적이 더 좁아졌다. 영상을 볼 때 구멍에 가리지 않고 보려면 많은 면적을 희생해야 한다. 전면 카메라가 있는 부분인데 자꾸 만져서 지문이 묻는 것도 별로 유쾌하진 않다. 문득 '맥북프로'에 탑재됐던 '터치바'가 떠오른다.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다지 쓸모가 없다보니 어느순간 스리슬쩍 사라지고 있다. 애플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다이내믹 아일랜드가 성공하려면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할 거 같다.
반면 AOD 기능은 확실히 체감이 된다. 기존 잠금화면 그대로 밝기만 어두워지는 애플식 AOD가 처음엔 약간 어색하기도 하지만, 시간은 물론 각종 위젯과 알림들도 실시간으로 갱신되기 때문에 확실히 확인하는 데 손이 덜 간다. 단기간이지만 지금까지 써본 바로는 배터리 소모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용칩을 채택했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화면을 뒤집거나, 주머니에 넣거나, 수면모드에 들어가는 등 화면을 볼 일이 없을 땐 자동으로 완전히 꺼주기 때문에 효율이 높아 보인다.
카메라 성능, '디테일'에 주목하라
프로 모델의 강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카메라 성능도 이름대로 '프로'가 아니면 다 쓰지도 못할 수준이다. 다만 점점 카메라 성능 향상이 사진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체감적으로는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이번 프로 모델은 최초로 4800만 화소 카메라 센서가 적용됐다. 기존에는 1200만 화소였다. 그럼 4배 좋아진거냐, 그렇지는 않다. 화소가 높으면 한 사진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같은 사진도 화소수가 높으면 더 촘촘하게 찍히기 때문에 확대해 보면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센서에 고화소를 밀집하면 빛에 민감해 저조도 환경에 약해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선 픽셀 4개를 하나로 묶어서 쓴다. 4800만화소를 다 쓰려면 '프로RAW' 포맷으로 찍어야 하는데, 사진 한 장이 약 70~80MB 정도로 용량이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크게 쓸 일이 없는 기능이다.
프로 모델의 경우 물리적으로 센서가 65% 커졌고, 광학 2배 줌이 생겨서 망원 촬영 환경도 좋아졌다. 조리개도 개선됐고, 매크로 촬영도 더 빨라졌다. 왠만한 전문 카메라가 부럽지 않은 스펙들이다. 기본 모델의 경우 망원 카메라가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기엔 충분해 보인다. 기본 모델도 센서가 커졌고, 조리개도 빨라졌다. 뛰면서 영상을 찍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액션모드'나 심도를 표현하는 4K '시네마틱 모드' 같은 기능은 일반형에도 프로와 똑같이 적용됐다.
아이폰14 시리즈 카메라 성능의 진면목은 '포토닉 엔진'에 있다. 어려운 말로는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 성능이 좋아졌다, 쉽게 말하면 보정을 더 잘 해준다.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하게 찍히는 데, 이 성능이 더 빠르고 디테일해졌다는 게 이번 신제품의 특징이다.
아이폰14 플러스, 대화면에 가벼운 무게 강점
가장 인기가 없다는 '아이폰14 플러스'도 실제 써보니 압도적인 장점이 있다. 가장 화면이 큰 아이폰을 무게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14 프로 맥스와 양 손에 들어보면 확실히 가볍다. 후면이 무광이고 측면이 유광인 프로 모델과 달리 기본 모델은 후면이 유광이고 측면이 무광이라 훨씬 덜 미끄러지고 그립감이 좋다. 디자인적으로 일상적인 사용 환경에선 일반 모델이 오히려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아이폰14 프로 맥스의 경우에는 너무 무거운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갤럭시 Z 폴드4를 쓰고 있는 입장에서 손목에 무리가 올 정도는 아니었다. 무게는 수치만이 아니라 실제 파지했을 때 밸런스도 고려해야 한다. 갤럭시 Z 폴드의 경우 수치만 놓고 보면 못 들고 다닐 것 같지만, 접었을 때 가로폭이 좁기 때문에 실제 쥐어보면 생각보다 편하다.
아이폰14 프로 맥스는 무게보다 미끄럽다는 게 단점이다. 보통 케이스를 쓰겠지만, 정품 케이스의 경우 무게가 상당해 끼우고 나면 꽤 부담이 된다. 어쩔도리 없이 가장 크고 가장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쓰고 싶다면 무게만큼은 감수해야 한다.
아이폰은 역시 아이폰
아이폰14 시리즈를 추천하는 이유를 굳이 새로운 기능이나 성능 향상 때문이 아니라 원래 아이폰 자체가 좋아서다. 기본기가 가장 충실한 스마트폰이다. 보이는 모든 화면은 완벽히 정제돼 있고, 동작은 매 순간 매끄럽다. 성능을 논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냥 깔고 가는 거다. 더구나 아이폰 옆에는 각기 세계 1위 제품인 '애플워치'와 '에어팟', '아이패드'가 있다. 생태계 관점에서도 아직은 아이폰이 최상단에 위치한다.
USB-C 포트를 지원하지 않아 충전선을 따로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을 빼고 조만간 애플페이가 도입된다는 소문을 더한다면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통화 중 녹음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더 큰 화면이 필요해 스마트폰을 접어 갖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폰을 사서 후회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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