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구글플레이 부스 '쿠키런: 오븐스매시' 체험 공간 /사진=남도영 기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구글플레이 부스 '쿠키런: 오븐스매시' 체험 공간 /사진=남도영 기자

국내 최대 게임쇼로 꼽히는 지스타가 개막하기 한 달 전인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질병코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발언을 통해 산업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게임특별위원회 2기를 출범하며 국회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죠. 과거 정부의 철저한 외면을 당해왔던 게임산업계에서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며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개막한 '지스타 2025'. 소문만 무성했던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무산됐고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홀대론까지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K콘텐츠 3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그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게임 분야. 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요. 


홀대받는 K게임

문체부의 지스타 홀대론은 지난 13일 개막식에서 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개막식에는 조영기 지스타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국내 주요 게임사 대표, 유관기관 수장들이 대거 참석했죠. 하지만 정부에서 현장을 찾은 인물은 극히 적었습니다. 게임사 출신인 문체부 장관은 커녕 차관, 국장 등 문체부 고위 관료의 모습은 볼 수 없었죠.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이 현장을 찾았을 뿐입니다.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5'가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했다. / 사진=남도영 기자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5'가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했다. / 사진=남도영 기자

개막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사회자가 개막을 선언하고, 참석한 내빈들이 버튼을 눌러 문을 여는 것이 개막식의 전부였습니다. 국회나 각종 행사장에서 너도나도 축사를 전하는 모습과는 달라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개막을 축하하는 영상, 축사, 현장의 멘트조차 없었습니다. 마치 관심 없는 현장에 억지로 끌러온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VIP 투어에선 국회의원들이 빠졌고, 투어에 동행한 고위급 공무원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시종일관 의욕없는 표정이었습니다. 

엔씨소프트 아이온2 부스를 직접 찾은 김민석 국무총리/사진=이수호 기자
엔씨소프트 아이온2 부스를 직접 찾은 김민석 국무총리/사진=이수호 기자

하지만 이러한 홀대론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방문으로 일단락 됐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지스타 현장을 둘러보고 각종 규제 해소를 약속하 것이죠. 김민석 총리는 "게임이 산업으로서 인정받고 정착한 상황인 만큼, 규제 (논의) 등 정부가 할 일이 많다"며 "지스타가 더 세계적인 대회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죠. 


'마주작'이 웬말이죠

정부와는 달리 국회는 좀더 적극적으로 지스타를 주요 일정으로 꼽는 모습입니다. 지스타 개막 이튿날인 14일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현장을 찾은 것이죠. 게임특위 2기의 출범의 중심에 있는 정청래 대표는 자신을 직접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라고 소개할 정도로 게임 마니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아직도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다며 게임산업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중 지스타 현장에서 해서는 안될 말을 했습니다. 게임산업 지원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던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마재윤 등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있다"고 언급했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 2025' 현장을 방문했다. / 사진=조성준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 2025' 현장을 방문했다. / 사진=조성준 기자

문제되는 발언은 '마재윤'입니다. 마재윤은 스타크래프트 승부 조작 사건으로 인해 e스포츠 생태계에서 영구제명된 인물입니다. 그의 행동은 e스포츠 생태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프로게이머 출신의 한 e스포츠 관계자는 마재윤의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폐지를 논의할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마재윤은 스타크래프트 생태계에서 금기어로도 불립니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금기로 치부되자 마주작, 마기꾼, 마모씨, 마읍읍 등 수많은 별명이 생길 정도입니다. 마재윤이라는 이름은 지스타에서, 그것도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나와서는 안될 이름이었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 2025' 현장을 방문했다. / 사진=게임기자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 2025' 현장을 방문했다. / 사진=게임기자단

그렇기 때문에 정청래 대표의 발언은 현장에서 웅성거릴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발언 직후 현장을 벗어난 취재진들은 저마다 자신이 들은 바가 맞는지 크로스 체크하며 확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정청래 대표는 "큰 실수를 했다.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청래 대표는 그동안 수차례 스타크래프트에 애정을 밝힌 게이머였습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이런 대형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의 스타크래프트 사랑도 '쇼'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게이머들은 웃었다

정부의 '무례'와 국회의 '무지' 속에서도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지스타 현장에서 4시간의 대기에도 불구하고 시연을 즐기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은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 어린 자녀와 함께 현장을 찾은 가족들. 수능을 마치고 다음날 바로 지스타로 달려온 수험생까지 있었습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크래프톤 부스 /사진=남도영 기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크래프톤 부스 /사진=남도영 기자

사실 올해 지스타 개막 직후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중 하나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나왔다'였습니다. 올해 지스타는 기존에 비해 대형 참가사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하고 전체적인 규모도 축소되는 등 볼거리가 적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2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게임축제를 즐겼죠.

분명한 것은 한국의 게임 산업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든든한 게이머들이 있고, 게임사들은 정부의 규제 속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K콘텐츠 300조원 시대'는 게임 산업 없이는 절대 달성할 수 없습니다. 국내 최대 게임쇼는 앞으로 해외 3대 게임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입장 대기줄 /사진=남도영 기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입장 대기줄 /사진=남도영 기자

정청래 대표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로 도움을 못주고 있는 가운데 발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발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규제 속에서도 온갖 암초를 뚫고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한 게임산업입니다. 정부와 국회에서 약속한대로 든든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그 성장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해집니다. 지스타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년 지스타에서도 꼭 다시 뵙겠습니다. 

부산=조성준 기자 csj0306@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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