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준 은퇴 후 시청자수 변동 없어

#01 라인들의 경쟁으로 '후끈'

#e스포츠도 결국 '콘텐츠'


2019년 카트라이더가 '역주행'에 성공하며 덩달아 카트라이더 리그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현장을 찾아오는 팬들로 경기장은 인산인해였고 온라인 시청자수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카트라이더 리그를 12년 동안 취재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기자 역시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사실 이 모든 관심은 한 선수에게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트라이더 리그 '황제'이자 오랜 기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한 문호준이 이 모든 상황을 이끌고 있었죠. 문호준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카트라이더 리그 인기를 견인했습니다.


문호준의, 문호준에 의한, 문호준을 위한

갑작스러운 인기몰이에 관계자들도 선수들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죠. 아마 주인공인 문호준이 가장 정신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문호준을 보기 위해 넥슨 아레나 앞에서 전날부터 기다리는 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문호준은 엄청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카트라이더 리그지만, '역주행'의 중심에는 문호준이 있었기에 그는 개인의 명예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를 위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문호준은 빠르게 지쳐갔습니다. 사실 어떤 분야에서 10년이 넘게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지치기에 충분한 일인데, 이제는 리그 운명까지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니 지칠법도 합니다.

관계자들은 불안했고 선수들도 불안했습니다. 문호준의 입에서 '은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다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들 문호준이 어떻게 하면 '은퇴'를 안하고 선수생활을 이어갈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호준/사진=이소라 기자
문호준/사진=이소라 기자

그리고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2020년 중반 개인전 은퇴를 선언한 데 이어 연말에는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한 것입니다. 저도, 관계자들도, 선수들도, 게임단도 모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카트라이더 리그의 인기가 시들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두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호준의 은퇴는 카트라이더 리그에 '분명히' 악재였습니다. 2019년 '역주행'을 시작했을 때 '쭉쭉' 치고 올라갔어야 하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2020년 무관중으로 리그가 진행됐고 넥슨이 준비했던 팬들을 위한 이벤트 모두 무산됐죠. 2020년 SK텔레콤과 야심차게 준비한 현장 이벤트 역시 한번도 실행되지 못하고 접어야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문호준까지 은퇴를 한다니, 다들 근심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시청자 수가 많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문호준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들어온 팬들이 더이상 카트라이더 리그를 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카트라이더 리그를 보는 시청자수는 문호준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8강 조별 풀리그가 마무리 된 현재, 동시 시청자수와 누적 시청자수를 비교해 보면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넥슨은 "경기마다 차이가 있으나 이번 시즌 본선 시청자 수는 평균적으로 지난 시즌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도 유튜브 동시 시청자수는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로서 가치 증명한 카트라이더 리그

문호준이라는 전대미문의 스타가 은퇴한 뒤에도, 시청자 수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결국은 e스포츠도 콘텐츠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콘텐츠의 힘만 있다면 선수 한명에 의해 리그가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눈으로 봤으니 말입니다. 

카트라이더 리그 자체가 가진 콘텐츠의 힘이 이제는 완전히 보여진 셈입니다. 한 선수에게 의지하는 리그가 아니라는 것 역시 증명했습니다. 카트라이더 리그가 이제는 e스포츠에서 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샌드박스 게이밍 박현수/사진=넥슨 제공
샌드박스 게이밍 박현수/사진=넥슨 제공

문호준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01 라인'이었습니다. 2020년 꾸준히 성장해온 '01 라인'들은 이번 시즌 잠재력이 폭발했습니다. 개인전 2회 우승자인 이재혁은 '주행의 신'으로 거듭났고 돌아온 유창현은 여전히 잘합니다. 배성빈은 에이스 결정전 3연승으로 문호준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한화생명의 7전 전승을 이끌었죠. 박도현 역시 배성빈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습니다.

가장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박현수입니다. 박인수의 지도 하에 박현수는 주행과 몸싸움에서 놀랄만큼 성장했습니다. 최근 개인전 16강에서 보여준 박현수의 플레이는 문호준의 전성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실제로 박현수와 배성빈 등 이번 시즌에 눈에 띄는 '01 라인'들은 비시즌 동안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시즌 흥행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경기력이 노력에 의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칭찬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e스포츠도 결국은 '콘텐츠'다

이들의 성장으로 카트라이더 리그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졌고 견고해 졌습니다. '01라인'이 맞붙는 날에는 동시 시청자수가 유튜브 기준 1만명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도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결국 e스포츠도 '콘텐츠'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넥슨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 모습입니다. 리그 콘텐츠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 콘텐츠를 추가적으로 생산하고 있죠.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잘 보여집니다.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증명한 카트라이더 리그는 이제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포스트시즌과 결승전까지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시청자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겠죠.

e스포츠도 결국은 콘텐츠입니다. 한 선수가 리그를 이끄는 듯 보여도 결국에는 '콘텐츠'의 힘이 리그를 이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종사자들이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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